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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하루 종일 분무기로 물을 뿌리듯 하늘에서 비가 내렸다. 그 비를 맞으며 인천 펜타포트 록페스티벌을 즐겼다. 2008년 펜타포트의 헤드라이너이기도 했던 영국 밴드 트래비스가 6년 만에 다시 인천을 찾았다. 멈추지 않는 비 속에서 관객들은 환호하고 그들의 노래를 합창했다. 헤비 메탈의 미래를 보여주는 듯한 일본의 크로스 페이스, 자신의 개런티를 음향과 무대 장비에 쏟아부으며 단독 콘서트급의 공연을 보여준 이승환이 첫날을 장식했다. 둘째 날, 압도적인 영상과 함께 신곡들을 대거 공개하며 공연장을 거대한 클럽으로 만든 이디오테잎은 이번 펜타포트를 통틀어 최고의 전리품을 챙긴 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시 2008년에 이어 두 번째로 내한한 영국의 카사비안은 지난 6월의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헤드라이너라는 위치에 걸맞은 공연으로 가장 많은 관객을 끌어모았다. 그리고 트래비스가 장식한 마지막 날까지, 아홉 번째 펜타포트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올해는 과열로 치달아왔던 여름 록페스티벌 시장의 구조조정기다. 라인업에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던 안산밸리록페스티벌이 세월호 참사의 여파로 취소됐다. 흥행에 참패한 지산월드록페스티벌, 슈퍼소닉은 사라지거나 축소됐다. 결국 개최 첫 회에 메탈리카와 뮤즈를 섭외하며 막강한 라인업을 자랑한 현대카드 시티브레이크와 펜타포트, 둘만 남은 셈이다.

이 둘 중, 나는 펜타포트를 응원하고 싶었다. 2006년 시작된 펜타포트는 더 이상 한국이 록페스티벌의 불모지가 아님을 보여주는 산증인으로서의 시간을 견뎌내왔다. 폭우와 함께 시작한 첫 해의 첫날, 1999년 역시 폭우로 중단된 트라이포트의 악몽을 떠올렸지만 끝내 지연 한번 없이 일정을 마침으로써 음악 팬들의 염원을 이뤄냈다. 해가 갈수록 라인업은 좋아졌고, 관객은 모여들었다. 그러나 2009년 주최 측의 ‘내분’으로 펜타포트와 밸리 록페스티벌로 시장이 양분되는 결과를 낳았다. 대기업을 낀 밸리록과 펜타포트는 라인업에서 비교가 되지 않았다. 섭외도 어려웠을뿐더러 일정도 늘 늦게 발표되곤 했다. 이러다가 없어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힘에 부쳐 보이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역시 대자본을 낀 페스티벌들이 생겨나며 여름을 가득 채우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결국, 펜타포트는 살아남았다.

2013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中 가수 들국화의 무대 (출처 : 경향DB)


펜타포트 생존의 비결은 무엇일까. 주최 측과 관객들이 각자 쌓아온 신뢰의 힘이다. 구성원에 변화는 있을지언정, 펜타포트는 몇 개의 회사가 기획과 제작을 공동으로 꾸려 왔다. 20세기부터 내한 공연을 기획한 사람들이 있고, 첫 펜타포트에 관객으로 참여했던 사람들이 있다. 그런 그들에게 이 페스티벌은 어느 순간 단순한 비즈니스를 넘어 사명감 비슷한 것이 됐다. 다른 페스티벌에 지고 싶지 않다는 오기, 어쨌든 해내고야 말겠다는 결의로 어려운 시간을 버텨냈다. 그들의 의지를 지탱한 것은 관객들이었다. 라인업을 따지지 않고 꾸준히 티켓을 사는 이들이었다. 역시 펜타포트의 처음을 지켜본 사람들이고, 화양연화의 시간을 함께해온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저 ‘소비자’가 아니라 해외 록페스티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관객문화를 객석에 채우며 또 하나의 생산자를 자임했다. 펜타포트가 어려운 고비를 넘어 다시 안정기에 접어들 수 있게 한 일등 공신이다. 서로가 서로를 장사치와 소비자로만 인식했다면 ‘경쟁’에서 진작 밀려 사라졌을 것이다. 저항문화와 여가문화의 교집합으로 탄생한 음악 페스티벌마저 대기업의 비즈니스 수단이 된 시대에, 끝내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자본의 논리와 관의 간섭에서 벗어나 생존할 수 있었다. 펜타포트는 내년이면 10년이 된다. 1회 때 혼자 왔던 이들이,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오는 모습을 볼 수 있는 2015년 여름의 인천을 기대해본다. 한 세대의 완성이 될 것이다.


김작가 |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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