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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문화와 삶

경계와 주변

opinionX 2014. 8. 11. 20:30

누구나 상상력이 가득한 창의적인 삶을 원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빌 게이츠를 꿈꾸는 것보다 당장 몸 하나라도 건사할 수 있는 안정된 직장을 구하는 게 더 절실할 수 있다. 거기에다 대고 미래를 꿈꾸는 상상력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말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다.

사회에는 수많은 멘토들이 있다. 때로 창의적 상상력으로 어둠을 뚫고 세상의 빛이 된 인물도 있다. 그들은 존경받아 마땅하며 그들을 본보기로 삼는 일은 자연스럽다. 절망과 좌절의 현실 속에서 그들은 존재만으로도 희망의 미래를 꿈꿀 수 있다. 거기에 이의를 달 수는 없는 일이다. 누군가가 누구의 역할모델이 될 수 있고 그런 관계를 통해 삶의 지향점을 가질 수 있으며, 사회적으로 건전한 소통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반대로 스스로의 생각으로 살아갈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해주기도 한다. 삶의 지표가 되는 사람을 가슴에 품고 있다는 것은 나쁘지 않은 일이지만 주류와 중심을 꿈꾸며 누군가의 삶에 기대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진정한 삶은 다가오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주류에서 밀려나 주변에 머물고 있는 사람이 상상력을 통해 중심으로 들어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설사 소외와 불안, 외로움과 패배의 주변에서 벗어나 주류에 도달한 일들이 신문의 지면을 장식하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더라도 상상력과 창의성을 통해서 주변적인 처지에서 일시에 중심의 위치로 이동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바로 상상력과 창의성을 말하는 가장 거짓된 방식이다.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극히 작은 확률이 영웅을 만들고 그들을 역할모델로 내세우며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말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먹고사는 문제에서조차 절망과 좌절에서 도무지 헤어날 수 없다면 그런 상황을 만든 모두를 향해 분노하는 것이 더 옳다. 창의성? 아니 분노가 먼저다. 절망의 상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사실에 먼저 분노해야 한다. 상상력은 그 다음의 일이다.


이 사회의 주류는 늘 자신들의 가치를 강요함으로써 스스로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한다. 주류의 중심에는 어른들이 있다. 그들이 지어낸 말 중 가장 부끄러운 말은 ‘어른들의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이다. 좋은 쪽으로 해석하면 세상을 살 만큼 산 어른들의 지혜를 따르는 것이 세상 살기 편하다쯤이다. 조금 더 생각하면 이 말이 기득권을 가진 어른들이 그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눈앞에 먹을 걸 흔드는 비겁하고 얄팍한 수단이라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다. ‘희망’의 떡을 눈앞에 흔들며 좌절의 상황에서도 분노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유일하게 남은 어른들의 사회적 역할일 뿐이다. 그렇더라도 살아남는 문제라면 그 떡을 먹어야 한다. 그리고 똑같이 말하는 어른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른들이 던져주는 떡은 먹지 않는 게 좋다. 자다가 먹는 떡은 체하기 십상일 뿐 아니라 떡을 주고 나서 이어지는 어른의 장광설에 대꾸조차 못한 채 고분고분해져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떡은 어른들로부터 나오지 않는다. 떡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말 창의적인 삶을 원한다면 멘토와 멘티 놀음은 집어치우는 것이 맞다. 그 사회적 관계 자체가 개인 앞에 놓인 수많은 지평을 가로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중심에서 멀어져 사회의 주변과 경계에 머물러 있는 것이 상상력과 창의적인 삶의 진정한 토대가 될 수 있다. 경계와 주변은 소외와 불안, 외로움과 패배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곳이다. 중심의 가치에서 소외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고 중심의 가치가 지배하지 못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새로운 지평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중심에서 벗어나 경계의 끝에 서 있을 때 현재의 사회시스템이 강요하는 주류의 지배적 가치는 더 이상 힘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게 유일한 희망이다.


김진송 | 목수·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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