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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람들의 마을엔 벌써 첫눈이 내렸단다. 추운 날 가만 온돌방에 붙어 있으며 소설가 이경자가 쓴 <시인 신경림>을 읽었다. 시인이 함께했던 어린이 잡지 ‘별나라’ 첫 장에 쓰여 있다는 글. “가난한 노동자와 농민이 잘살고, 그 아들딸들이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는 나라.” 그런 세상이 별나라가 아니라 우리나라가 되길 나도 빌었다. “광화문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 사이에 사막과 초원까지 가서 찾던 별이 보인다. 종로 을지로 그리고 서울을 온통 뒤덮은 뜨거운 숨결 속에 별이 보인다. (중략) 너무 어두워 서울 하늘에서는 사라진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 보인다. 눈비도 아랑곳없이 늦도록 흩어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촛불들 사이에 별이 보인다.”(신경림, 별이 보인다.) 촛불 혁명 내내 도심에 뜬 별들. 하늘은 눈구름으로 캄캄해지고 송이눈이 함지박으로 내리는 날에도 기상관측 사상 최초(?)로 광장에 별이 내려앉은 순간들을 우리는 목격했다. 때가 차면 때가 됐다고, 열일 제치고 말했던 우리들.

이건 레몽 크노의 시집 <만돌린을 든 개>에 나오는 구절이다. “눈이 올 땐 눈이 온다고, 열일 제치고 말해야 한다.” 별이 눈부시거나 눈이 내리는 순간, 다른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환희에 찬 목소리로 다 같이 “별이야! 눈이야!” 소리친다면 우리 인생이 배나 아름답고 소중해질 거 같다. 여행을 할 때 비행기가 공중에 뜨면 꼬마 친구들은 일제히 박수를 친다. 천진무구 기쁨에 찬 탄성을 잃어버린, 굳고 말라버린 시무룩한 어른들. “돈이야! 내 거야!” 밤낮 없는 아귀다툼 속에 쪼그라들고 비틀어진 인생들.

별처럼 나뭇가지에 높이 떴던 감을 따다가 쟁여놓고 보니 얌전히 홍시가 되고 곶감이 되었구나. 단단하고 떫던 감도 시간이 흐르면 물렁물렁하고 달달해진다. 우리 인생도 세월 따라 물렁하고 달콤해져야지. 돈이야! 내 거야! 소리치고 다니지 말고 별이야! 눈이야! 소리치며 살아야지. 작년엔 모진 추위에 촛불을 들었던 국민들. 연말엔 안도하는 탄성을 내지를 수 있길. 촛불 정권은 오로지 국민만 보고 적폐청산 고삐를 세게 당겨야 한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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