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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로부터 밤나무는 광합성으로 만든 양분들을 그러모아 이 모양대로 열매를 만든다. 그리고 옛날과 같은 포장, 똑같은 방식대로 가지에서 뿌리 쪽으로 밤을 떨어뜨린다, 툭. 공주 근처 정안알밤휴게소에서 구입한 그 알밤 하나를 깨물고 부여로 들어서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오늘은 올해의 마지막 날, 부여에 눈이 와줄까.

지난여름, 부여에 갔었다. 아, 정림사! 뜻밖의 감정들이 툭툭 튀어나와 물구나무를 섰다. 백제는 百濟이니 ‘백성을 구제한다’는 뜻으로 대강 눙칠 수 있겠으나 부여는 왜 ‘남을 여(餘)’일까. 무슨 넉넉한 마음이길래 고장의 이름을 이리 삼았을까. 그러다가 박물관에서 왕흥사 사리기의 명문(銘文)을 보았다. 丁酉年二月十五日 百濟王昌 爲亡王子立刹本 舍利二枚葬時 神化爲三(정유년 2월15일 백제왕 창이 죽은 왕자를 위하여 절을 세우고 사리 2매를 묻을 때 신의 조화로 셋이 되었다). 저 고졸한 글씨가 환장할 만큼 마음을 끌어당겼다. 급기야 백제 공부로 마음이 쏠리면서 정림사지 탑 앞에서 작은 약속을 하나 했다. 올해 이 자리에 나도 탑처럼 다시 서리라. 비나 눈이 오는 건 내 소관이 아니겠지만 반드시 해 질 녘에!

이런저런 겨를에 시달리다 보니 오늘이 마지막 기회였다. 국립부여박물관의 백제산수문전(百濟山水文塼) 전시회를 보고 서둘러 정림사로 가니 마감이 임박했다. 경자년이 닫힐 무렵에 겨우 들어가 탑을 사무치게 우르러 본 금쪽같은 10여분.

백제초등학교 앞 문구사에서 저 6행 29자를 받아적을 연습장을 산 뒤 식당을 기웃거리는 동안 하늘에 간지러운 기운이 흘렀다. 어디 밤의 한구석이 터지려나. 그러더니, 그러시더니, 콩나물국밥을 먹고 계백로로 나섰더니, 아, 눈이 펄펄 오지 않겠는가. 눈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위에서 아래로 떨어진다. 지금 부여를 덮는 눈은 백제에 내렸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정림사지 옆 작은 솔숲 오솔길에서 그렇게 생각하면서 뒤돌아볼 때, 문득 둘이 찍은 발자국도 넷이 걷는다는 저 기척.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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