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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7월28일 미국 본토 중부까지 도달할 수 있는 1만㎞짜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을 시험발사했다. 7월4일 미 서부까지 도달할 수 있는 8000㎞ ICBM을 발사하더니, 24일 만에 사거리가 2000㎞나 늘어난 ICBM을 발사했다. 북한 미사일 기술이 이런 속도로 진행된다면, 올 하반기에는 미 동부까지 도달할 수 있는 1만2000㎞ 이상 ICBM 개발도 가능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새벽 1시에 국가안보회의를 주재하고, 사드발사대 4기의 추가 배치와 미사일 대응능력 강화를 명령했고, 우리 단독으로도 북한이 절감할 수 있는 압박 수단을 찾으라고 지시했다. 취임 초 문 대통령은 북한의 핵·미사일 정책으로 ‘제재와 대화’ 병행을 천명했다. 따라서 문 대통령의 이번 조치는 원칙에 맞고 시의적절했다. 앞으로 미국과 일본은 북한을 비난하는 말 폭탄을 쏟아내면서 유엔 대북 제재를 주도할 것이다. 그러나 7월4일 미사일 발사 제재에 대해서 반대했던 중·러가 이번 미사일 발사 제재에 대해서도 거리를 두는 입장이다. 미국 주도 대북제재결의안이 안보리를 통과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 시점에서 “설사 중·러가 동참한들 유엔 제재가 앞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를 막을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해본다. 지금까지 유엔 대북제재결의안이 5개 이상 시행되었고 미·일의 단독제재도 몇 차례 있었다. 그러나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은 시간에 비례하여 고도화되었다. 북한을 강력하게 다룰 것이라고 호언하던 트럼프 정부 출범 후 북한은 보란 듯이 13회나 미사일을 발사했다. 압박과 제재를 가해도 북한의 도발행위는 멈추지 않고 있다.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는 ‘바늘과 실’ 같은 관계다. 작년에 북한은 핵실험을 두 번이나 하더니, 금년에는 월평균 1.5회 이상 미사일 시험발사를 하고 있다. 5차에 걸친 핵실험으로 탄두의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를 이룬 후 북한은 미사일 사거리 늘리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그렇다면 북핵·미사일 정보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고, 그동안 이 문제 해결을 주도해온 미국이라면 북한이 미사일 사거리를 미 본토까지 늘리기 전에 손을 써야 하는 것 아닌가? 이제 와서 유엔 제재니, 독자 제재니, 중·러도 협조하라느니 하는 건 ‘사후약방문’식 대응이 아닐 수 없다.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걸 가래로도 못 막게 되는 어리석음이 더 이상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북핵·미사일 정책의 프레임 자체를 바꿔야 한다. 오바마-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동안의 ‘압박과 제재’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도 ‘최대의 압박과 관여’를 대북정책으로 천명했고, 문 대통령도 ‘제재와 대화’를 대북정책 기조로 천명했다. 더 이상의 북핵·미사일 능력 고도화를 막기 위해서는 ‘관여(미국)’와 ‘대화(한국)’의 물꼬를 트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그 프레임은 이미 북핵·미사일 문제를 다뤄 본 미·중의 전략가들이 내놓았다. 중국의 왕이 부장이 제의한 ‘쌍중단(雙中斷)-북한의 핵·미사일 도발과 한·미 연합 군사훈련의 중단’, 미국의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과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차관보가 제안한 ‘동결 대 동결(suspension for suspension)-북핵 동결 대 한·미 군사훈련 동결’이 그것이다. 북한도 2015년과 지난해 초 핵개발 중단과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맞바꾸는 조건으로 북핵회담 재개를 제의했었다. 그러나 오바마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그 제안을 거부했고, 북핵회담은 열리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그 시간 동안 북핵·미사일의 고삐가 풀린 것이다. 

문 대통령의 지시로 시작한 조치는 해 나가야 한다. 한 고비를 넘기고 나면, 우리 정부가 ‘동결 대 동결’ ‘쌍중단’ 같은 북핵·미사일 문제 해결의 입구로 들어가는 정책프레임 전환을 선도해야 할 것이다. 압박과 제재 일변도의 대북정책, 이것도 박근혜 정부 적폐의 하나로서 청산대상이다. 문재인 정부는 소신과 책임감을 갖고 그 방향으로 한·미 간 협의를 시작해야 한다. 북핵·미사일 문제 해결의 프로세스를 가동시켜야 하는 책임은 그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황재옥 | 여성통일외교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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