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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 비정규직 종합대책이지, 실제로는 정규직을 겨냥한 내용인데?” 사실이다. 박근혜 정부는 비정규직 문제가 ‘정규직 과보호’ 탓이라며 성과·업적 중심의 임금체계로 바꿔야 한단다. 해고 기준과 절차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한다며 정규직에 대한 손쉬운 해고도 밀어붙이고 있다.

이 가이드라인에는 ①객관적·합리적 기준에 의한 평가 ②교정기회 부여, 직무·배치전환 등 해고회피 노력 ③공정한 절차와 관련 내부규정 운영 등이 들어 있다. 아니, 이거 어디서 많이 보던 단어들인데? 그렇다. 합리적 대상자 선정, 해고회피 노력, 노조와 성실한 협의 절차 등 정리해고 요건에서 ‘긴박한 경영상 필요’를 제외한 나머지 요건을 빼다박았다.

다시 말해 사장님들은 이제 개별 노동자의 성과와 업적을 평가한 후 경영이 어려울 때엔 정리해고를, 그렇지 않을 때엔 일반해고를 할 수 있게 된다. 해고를 면한다 하더라도 성과·업적에 따라 임금을 깎도록 임금체계도 개편해 준다니, 사장님들은 박근혜 정부 비정규대책에 만세를 부를 지경이다.

“그래도 우린 노조가 있으니 단체협약으로 보호가 될 거야.” 이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다면 정부 대책은 도대체 누구를 겨냥한 것일까? 비정규직도 아니고, 노조로 조직된 노동자도 아니라면? 그렇다. 한국 사회 90%에 달하는 이들, 노동조합을 갖지 못한 노동자들이다.

정부가 손쉬운 해고를 밀어붙인다는 말에 가장 위기의식을 느끼는 부문이 바로 여기이다. 여성 노동자들, 중소영세기업 노동자들, 대기업의 경우 상대적으로 조직률이 취약한 사무일반직 노동자들 …. 임금체계 개편에 두려움을 느끼는 이들도 똑같다. 노조라도 있으면 단체협약으로 보호되겠지만, 노조가 없는 곳은 속수무책이다.

상당수 사업장에서 성과상여금 제도와 포괄임금제를 도입하며 임금을 깎으려 할 게 뻔하다. 물론 이렇게 하려면 사장님들은 노동자 과반의 동의를 얻어 취업규칙을 변경해야 하는 수고를 들여야 한다. 하지만 정부 비정규직 대책에는 취업규칙 변경에 대한 규제도 완화하자는 내용이 들어 있다. 나 원 참, 이 노동자들 뺏어먹으려고 깨알같이 신경 쓴 거다. 근로기준법을 바꿔서 1주당 노동시간을 현행 52시간에서 늘려 60시간까지 일을 시킬 수 있도록 개악하고, 여기에 덧붙여 휴일수당도 없애겠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노조가 있는 사업장은 단협으로 방어할 수 있지만 무노조 사업장 노동자들만 고스란히 피해를 입게 된다.

지난 10여년간 정권이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은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노조로 조직된 정규직을 비난하면서 비정규대책을 내놓지만, 비정규직에겐 나아지는 게 없었고 오히려 노조가 없는 노동자층만 점점 밑바닥으로 내려앉았다. 그러다보니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는 더 벌어졌고, 미조직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추락하면서 조직노동자들의 고립은 계속 심화되었다. 노조 조직률도 하락세를 면치 못해 조만간 한 자릿수로 떨어질 위기이다.

김동만 한국노총위원장(좌측)이 7일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사무실을 방문해 한상균 민주노총위원장(우측)과 쌍용차 굴뚝농성 내용이 담긴 신문을 보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출처 : 경향DB)


70만명 조합원 중 40만명이 투표에 참여한 민주노총 직선제에서 많은 이들의 예상을 뒤엎고 총파업을 공약한 한상균 지도부를 선택했다. 비록 노조라는 무기를 갖고 있지만 자신을 포위해오는 위기의식이 컸다는 증거이리라. 그렇다면 한상균 지도부가 조직할 총파업이 향할 곳도 명확하다.

박근혜 정권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이 겨냥하고 있는 부문, 즉 노조를 갖지 못한 채 조직노동자들보다 훨씬 강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요구와 방식으로 접근함이 마땅하다. 장그래에게, 그리고 김대리와 오과장에게도 노동조합을 만들겠다는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주는 그런 총파업.


오민규 | 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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