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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세상읽기

위증의 시대

opinionX 2015. 2. 2. 21:00

변호사로 일하는 한 친구가 요즘 겪는 당혹스러운 일에 대해 알려줬다. 한마디로 말해 사람들이 위증을 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거리낌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과거에는 자신이나 친구를 위해 위증을 해야 하면 아예 법정에 나타나지 않거나 나타나도 티가 났는데 요즘은 그런 게 없어졌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자기가 내야 할 진술서를 변호사에게 알아서 써달라고 요구한단다. 편들어야 할 쪽에 유리한 대로 써주면 자기가 도장을 찍어주겠다고 말이다. 그러다보니 의뢰인의 인생 경력과 교육 수준에서는 나오지 않는 말로 써진, 누가 봐도 그 사람이 쓴 것이 아닌 ‘자술서’가 제출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자신의 기억에 반하는 것을 진술하는 것이 위증이라 이게 양심이 걸리지 않을 수 없는 일인데 이익을 위해서는 그 정도의 자신을 배반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닌 세상이 되었다고 개탄했다.

위증의 시대다. 십계명에서는 이웃에게 거짓증언을 하지 말라고 했지만 이 시대의 계명은 반대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거짓증언을 하라. 위증을 하는 것이 능력이고 자신의 위증을 감추고 진실을 드러내는 사람을 억압할 수 있는 힘이 권력이다. 그리고 그 힘을 가져야만 성공할 수 있으며, 그 힘이 없으면 위증에 빌붙어 거짓증언을 보태는 것이다. 최근 이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땅콩 회항’이다. 사건 초기부터 그랬다. 거짓이 드러날 때마다 또 거짓으로 그것을 덮으려고 했다. 자신들만 거짓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사무장과 승무원에게도 거짓증언을 유도했다. 심지어 2차 공판에 출석한 여승무원은 회사 관계자가 모친에게 전화를 걸어 사과에 협조해준다면 교수직의 기회가 있지 않겠냐고 제안했다고 진술했다.

이 위증의 시대에 인간은 뻔뻔해진다. ‘죄송하다’는 말은 많았지만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연출된 ‘사과’만 있었을 뿐이다. 원하지도 않는데 집을 찾아가 쪽지를 남기는 식으로, 사과하는 사람의 ‘진정성’을 돋보이게 하며 사과를 ‘받아줄 것’을 강요했다. 여승무원의 모친에게 회사 관계자가 전화를 걸었을 때도 ‘사과에 협조’해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사과를 받는 쪽이 사과를 하는 쪽에 협조하는 것이 사과라는 것을 이 사건으로 처음 알았다. 사과조차 이웃을 해하는 거짓증언이 되었다.

'땅콩 회항'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 등에 대한 결심공판이 열린 2일 서울 공덕동 서부지법으로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 등을 태운 호송차량이 들어오고 있다. (출처 : 경향DB)


증언은 말 중에서도 무게감이 상당한 말이다. 왜냐하면 증언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누군가의 ‘앞’에서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증언이라는 말에는 존재의 무게가 동시에 걸려 있다. 단지 처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이 무게가 두렵기 때문에 거짓증언은 쉬운 것이 아니다. 바로 이 때문에 2차 공판에서 공개된 파일에 따르면 박창진 사무장은 “국토부는 회사와 다르게 국가기관인데 거짓” 진술을 하느냐면서 “죽을 것 같다”고 오열한다. 자신의 양심과 ‘국가기관’, 즉 법 앞에서 이루어지는 말이라는 증언의 무게를 느끼기에 그는 오열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뻔뻔한 자들은 이런 무게를 느끼지 않는다. 뻔뻔한 자들의 증언에는 자신의 이름도 걸려 있지 않고 말을 증언으로 보증하는 ‘앞’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증언이 이뤄지는 ‘앞’이 없는 뻔뻔한 사람들에겐 거짓증언하지 말아야 할 ‘이웃’은 없다. 이웃이란 그 말을 증언으로 보증하는 ‘앞’이 같고, 그 ‘앞’에 평등하게 나란히 선 자를 말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거짓증언은 단지 위증하는 자의 개인적인 도덕의 문제가 아니다. 거짓증언으로 피해를 입는 ‘이웃’과의 사적인 관계 문제도 아니다. 그것은 ‘앞’과 이웃으로 이뤄지고 보증되는 공동체, 즉 ‘나라’를 파괴하는 정치적 문제다. 이것이 정치공동체가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증언을 하지 말라는 것을 중요한 계명으로 삼는 이유다. 땅콩 회항 사건은 ‘갑질’이라는 한국 사회의 한 추악한 특징이 드러난 것을 넘어 바로 이것을 시험받고 있다.


엄기호 | 덕성여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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