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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동네’는 1960~1970년대 가난의 대명사였다. 높은 곳에 동네가 자리잡고 있어 달이 잘 보인다는 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산업화에 따른 대규모 이농으로 도시에 몰려든 주민들이 산비탈이나 고지대에 모여 다닥다닥 붙어살던 곳이었다. 달동네는 싼값에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는 터전이자 생존 공동체이기도 했다. 정신없이 쓸려들어온 도시생활의 각박함 속에서 지친 심신을 어루만져줄 이웃의 따뜻한 정도 있던 시절이었다.

1980년대 들어 재개발이 본격화되면서 달동네는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고, 아파트 단지가 속속 들어서면서 90년대 후반에는 거의 대부분 사라졌다. 그렇다고 가난한 사람들의 고단한 삶까지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2000년대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달동네는 ‘반지하’와 ‘옥탑방’ ‘쪽방’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옷을 갈아입었을 뿐이었다.

지난주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수원 세 모녀’의 사연이 전해졌다. 60대 여성과 40대의 두 딸은 경기 수원의 다세대주택에 살면서 오랜 기간 암 등 난치병과 생활고로 심한 고통을 겪었다. 한 달에 1만원대에 불과한 건강보험료조차 내지 못할 형편이었다. 도움을 줄 친척도, 이웃과의 교류도 없었다고 한다. 긴급복지·생계비 신청도 하지 않아 정부나 지자체의 복지 지원도 받지 못했다. 사회와 완전히 고립된 ‘위기가구’였다. 그런 상황이 결국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들은 달동네 시절보다 더 각박한 삶을 살았던 셈이다.

광주에서는 나이가 차 보육시설에서 퇴소한 젊은이들이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비극이 잇따랐다. 장애인 부모 때문에 보육시설에서 자라다가 지난해 2월 그곳을 나와 아버지를 모시던 19세 청년이 지난 24일 생의 끈을 놨다. 시설에서 퇴소한 지 1년6개월 만이었다. 그는 유서에 “왜 내가 이런 힘든 삶을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살아온 삶이 너무 가혹했다”고 적었다고 한다. 이보다 사흘 전엔 보육시설에서 나와 홀로서기를 꿈꾼 18세의 대학생이 기숙사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그는 죽기 전 보육원 관계자와 통화하면서 ‘돌봐주는 사람이 없어 너무 힘들다’고 호소했다고 한다.

빈곤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빈곤 퇴치를 위해 정부가 실시해온 정책 역시 한둘이 아니다. 생활능력이 없거나 곤궁한 국민의 최저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2000년 시행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이후 여러 대안과 정책이 마련됐다. 하지만 ‘수원 세 모녀’와 같은 비극은 늘 반복돼 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복지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한 구상과 보완책이 줄을 잇고 있다. 위기가구를 찾아내 지원하기 위한 수집 정보 항목을 늘리고, ‘핫라인’을 구축하는 등 시스템을 개선하겠다는 얘기들이 나온다. ‘숨은 세 모녀’를 찾겠다며 건보료 연체 가구에 대한 점검도 추진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복지 담당 공무원은 부족하고, 실제 위기기구를 찾아내더라도 이들의 생활을 지속적으로 지원할 만한 자원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빈곤 해결이 구두선에 그칠 것 같아 보이는 이유다.

중요한 것은 아직도 빈곤 문제가 일반인들의 의식에 절절하게 와닿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뉴스 속에서 세간의 관심을 자극하는 몇몇 사례가 나오면 ‘반짝 관심’을 갖는 게 전부다. 그러고 나면 곧 잊혀진다. 정부 부처나 유관기관이 내놓은 수치만으로는 빈곤의 심각성을 체감하지 못한다. 예컨대 수원 세 모녀와 같이 월 5만원 이하 건강보험료를 체납하는 ‘생계형 체납자’가 지난해 6월 기준 73만가구에 이른다는 통계만 보고 빈곤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제대로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빈곤을 해결하려면 근본부터 따져 들어가야 한다. 바로 ‘빈곤은 정의의 문제’라는 시각에서 해법을 찾는 것이다. 아무리 부유한 사회라 하더라도 개인의 노력과 상관없이 가난해질 수 있는 기회의 불평등과 불공정이 존재하는 한 빈곤은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는 결코 정의롭다고 할 수 없다. 빈곤이 단순히 물질적 결핍에서만 비롯된다고 하기도 힘들다. 경제가 발전하고 많은 사람들이 많은 돈을 번다고 빈곤이 단숨에 사라질 수는 없다는 얘기다. 모르고 지나치는, 일상에 녹아 있는 빈곤문제를 끄집어내서 구체화해 공론에 부쳐야 한다. 시민들이 빈곤에 빠질 수밖에 없는 모순된 사회구조를 바꾸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조홍민 사회에디터 dury129@kyunghyang.com>

 

 

연재 | 에디터의 창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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