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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절 깊게 연대한 누군가의 죽음은 내 삶을 성찰하게 한다. 이때 누군가의 죽음은 소설가 박상륭이 통찰했던 ‘공문(空門)의 안뜰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바깥뜰에 있는 것도 아닌’ 것이 된다. 

허대만 전 더불어민주당 경북도당위원장.  포항에서 1995년 전국 최연소 시의원으로 당선됐지만 이후 7번 선거에서 7번 모두 낙선했다. 포항에서 민주당 깃발을 들고 30년 가까이 정치를 한다는 것은 ‘악마의 맷돌’에 인생을 갈아넣는 일이다. 스스로에게 가했던 심적 질타는 얼마나 매서웠을까. 결국 그는 쓰러졌다. 두 번의 시한부 선고에도 여러 해를 넘겼지만 지난 8월22일 생을 내려놓았다. 

포항과 정치를 매개로 그와 오랜 인연을 이어왔다. 고향은 그를 권력의 바깥으로 밀어냈지만 그에게 고향은 가능성과 도전의 바다였다. 그래서, 그라면 어떤 상황도 견딜 것이라 안도했다. 이제 그의 부재가 결핍이 된 포항. 그에게 고향은 30년 목엣가시였다. 

포항에서 민주당 정치를 한다는 것은 지역주의와의 싸움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지역주의도 변했고, 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화 이전엔 영·호남이 지역주의 패권의 중심이었다. 수도권은 중립지대였다. 그는 “영·호남 정치인들은 예산 유치에 혈안이 됐고, 주민들은 특정 정당에 힘을 몰아주면서 지역주의가 유지됐다”고 말했다. 지역 정치권이 무능해도, 주민들은 ‘알아서’ 결집했다. 영·호남 정치인들은 주민들의 ‘정치적 스톡홀름 증후군’을 맘껏 이용했다. 지방선거는 지역대망론, 중앙정치 대리전으로 치러졌다. 민주화 이후 지역주의는 다른 얼굴로 등장했다. 수도권이 과실을 챙겼다. 지역 쇠퇴를 등에 업고 수도권 지역구가 늘어난 현상이 단적인 예다. 2005년 60여개 분야를 지역으로 이전한 복지분권 사업도 마찬가지다. “지방선거 승자는 수도권, 패자는 지역”이라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이 무렵부터 가치와 콘텐츠에 눈길을 돌렸다. 1995년 시의원이었을 때 지역문화예술활동 지원조례를 발의했다. 그의 동지인 박희정 시의원은 “그가 정치권 밖에 있는 동안 방치되다가 지난해에야 목표액의 절반인 20억원의 기금이 조성됐다”고 아쉬워했다. 최근엔 포항의 미래를 걱정하며 ‘포스트 철강’을 찾는 데 고심했다.

2017년 11월 발생한 포항 지진은 대형 재난이었다. 칠레 발파라이소의 잦은 지진을 ‘우주적인 공포’에 빗댔던 파블로 네루다의 말이 실감날 정도였다. 당시 그는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정책보좌관이었다. 그는 지진 발생이 이명박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국책사업과 연관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포항의 미래로 추앙받았던 지열발전소의 수압 파괴를 지진 발생 요인으로 지목한 것이다. 얼마 전태풍 힌남노가 포항을 강타했다. 그가 있었다면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아류 사업인 ‘고향의 강(냉천) 정비사업’이 하천 범람의 원인이었음을 조목조목 따졌을 것이다.  

그의 죽음 후 이른바 허대만법으로 불리는 선거법 개정 요구가 커지고 있다. 선거법 개정은 지역주의가 어떤 얼굴이든 중요하지 않았던 적이 없다. 문제는 지역 1당 체제 해소를 위한 지역주의 개선책이 여의도 중심주의를 강화했다는 데 있다. 정당공천제, 지분(비례대표, 대의원 배정 등) 분배 결과가 어떠했나. 그는 영·호남을 축으로 한 지역주의 구도가 희석된 뒤 갈등의 주전장이 정당 내부로 옮겨왔다고 봤다. 특히 원외의 원내 종속화를 지적했다. 민주당의 원외란 수도권과 호남, 충청 일부를 제외한 곳이다. 원내 정치는 선거법 개정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수도권은 의석 기득권을, 호남은 지역 기득권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다. 그는 “선거법 개정을 하려면 ‘여의도 민주당’과 싸워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험지에서 고생했으니 호의를 베풀어달라는 식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고도 했다. 2013년 당 기초자치정당공천 폐지 검토위원회 자문단장을 맡은 것도 제도 개선을 정치발전이라는 큰 틀에 담으려 한 의지였다. 박 의원은 “허 위원장은 허대만법이라는 명칭이 반갑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죽고 나서야 ‘영일만의 자부심’이 된 ‘만년 야당 정치인’ 허대만. 답답할 정도로 원칙적이고, 정치 이외엔 세상의 결을 읽는 데 미숙했다. 하지만 제때 당겨지지 않은 방아쇠를 쥐었을 뿐, 그는 한 시대의 평균값을 다한 사람이었고, 절벽 끝에서도 성장하고 진화한 정치인이었다. 정치가 어디 설명으로 될 일인가. 수많은 허대만들이 그를 기억하는 한 ‘허대만 인생’의 장례는 끝났어도 ‘허대만 정치’의 장례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구혜영 정치에디터 koohy@kyunghyang.com>

 

 

연재 | 에디터의 창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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