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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사람들이 조기대선을 ‘벚꽃 대선’이라 하더니 벚꽃은 4월에 핀다고 ‘장미 대선’이라고 바꿔 부른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수수한 민들레로 대선을 부르자는 제안도 나온다. ‘장미 대선’이나 ‘민들레 대선’이란 이름엔, 지금 선거 내용과는 별개로, 봄내가 물씬하다. 박근혜를 구속시키고, 최소한의 정권교체는 가능한 듯한 분위기도 봄내를 더한다.
정치·사회의 봄은 왔는가? 박근혜 정권이 불러온 문제에서 벗어났는가를 되돌아본 건 한 매체 기사 때문이다. ‘노동과세계’가 지난 22일 서울 중심부에서 진행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우리 일터 ‘새로고침’ 대행진>에 단 부제는 “정치의 봄은 우리의 삶과 일터의 봄으로 이어지지 않았다”이다.
노동 현장엔 매서운 찬바람이 분다. ‘노동자민중 생존권 쟁취를 위한 투쟁사업장 공동투쟁위원회’ 소속 노동자 6명이 서울 광화문 한 건물 전광판에서 고공단식농성 중이다. 울산에선 하청노동자 2명이 염포산터널 부근 교각에서 농성한다. 조기대선은 죽음을 끊어내지도 못했다. 지난 1월 LG유플러스 현장실습생이, 지난 18일엔 갑을오토텍의 한 노조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3월 1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마지막 촛불집회(20차)가 열리고 있다. 촛불집회는 지난해 10월 29일을 시작으로 매주 주말마다 서울 도심에서 진행됐다. 이준헌 기자
대통령 하나 바꾼다고 세상이 확 바뀔 것이라고 믿지는 않았다. 촛불광장 시민이 직접 민주주의로 이룬 이번 대선에서 노동자들이 다시 극한의 고공농성을 벌이고, 자살하는 일만큼은 없을 것이라고 여겼다. 노동자들은 1차 때부터 박근혜 퇴진과 노동의제를 갖고 선봉에 서온 촛불집회 주체 가운데 하나다. 광화문에서 고공농성 중인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대의원 오수일은 언론 기고에서 절망과 분노를 이렇게 말했다. “박근혜가 쫓겨났다. 그런데 아무것도 변한 건 없다. 오히려 대선후보들 밥상만 차려준 꼴이다.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죽어가고 쫓겨나는 현실을 저들은 외면하고 있다.”
대선 노동 의제는 되레 퇴보했다. 2012년 문재인이 쌍용차·한진중을 찾았고, 안철수가 삼성백혈병 피해 노동자를 만났다. 박근혜도 청계천 전태일 동상에 갔다. 지금 유력 후보들은 “비정규직을 줄이겠다”는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말할 뿐 ‘비정규직 사용 전면 금지’ ‘2018년 최저임금 1만원 인상’ ‘사내하청제·기간제법·정리해고제 폐지’ 같은 요구에 구체적으로 답하지 않는다. 예견된 일이다. “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새누리당에서 이탈한 보수층의 표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5678서울도시철노동조합이 지난해 11월2일 낸 시국선언문 중 한 구절이다.
노동 대통령을 표방한 심상정을 뺀 주자들은 저마다 ‘성장’ ‘4차 산업혁명’의 적임자임을 내세운다. 자신만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자신한다. 영국 신학자 허버트 매케이브의 말을 빌리면 ‘모든 이가 사랑에 빠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랑스러운 세계전망’일 뿐이다. 헛된 낙관이 되리라는 걸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다.
소외된 촛불의제는 노동만이 아니다. 시인 송경동은 줄곧 촛불집회 현장을 지켰다. 세월호법 재개정, 사드 반대, 백남기 농민 사망 진상규명, 박근혜 정권의 공작정치·공안탄압 국정조사, 재벌개혁 같은 촛불의제를 정치권이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대선의 보수화는, 촛불집회가 박근혜 일당을 단죄했으나 새로운 사회 의제·가치·방향·정책을 담아내는 정치세력의 출현 내지 재편으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촛불의제는 사라지고 말 것인가? 송경동은 촛불의제 부재를 일시적이라고 본다. 거저 오는 것은 아니다. 그는 촛불집회의 다음 단계를 고민한다. 정권교체를 종착역으로 설정하지 않고, 2단계의 항쟁·혁명을 준비하는 것이다. “쉽진 않지만 촛불광장의 승리 경험을 토대로 특권·불공정·불의·부패가 발붙일 수 없는, 평범한 사람의 삶이 평화롭고, 평등하며 행복할 수 있는 사회로 바꿔나갈 것”이라고 했다.
모바일팀 | 김종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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