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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19대 대선이다. 접경지대에 선 기분이다. 권력과 역사의 긴장이 교차하는 곳, 과거와 미래가 교차하는 곳쯤이겠다. 우리는 5월9일 이후 어두운 경계선을 지날 수 있을까.

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73)는 최근 <불타는 얼음>을 출간했다. 형벌과도 같은 그리움으로 보낸 지난 세월의 자서전이자, 반세기 동안 남북의 경계인으로 살았던 회고록이다. “식민지, 한국전쟁, 독재를 겪은 뒤 서독 유학을 택했다. 첫 경계선이었다. 그걸 넘으니 제국주의와 반제 민족해방투쟁 사이의 첨예한 경계선을 만났다. 또 넘어섰다. 그리고 2017년 대선….” 송 교수는 2003년 가을 37년 만에 조국 땅을 처음 밟았던 때보다 긴장한 목소리였다. 이번 대선 의미를 말하면서 1987년의 아픔을 반복했다. 그는 “유력 후보들이 표심에만 몰두하고 있다. 87년 대선의 양김처럼 갈등만 커지면 정권을 교체해도 소용없다. 어려운 시대를 함께 헤쳐가는 상생의 철학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2003년 귀국 당시 노무현 정부가 보수의 포위망에 갇혀 있던 걸 경험했던 그다. “보수가 약화됐다지만 대선 이후 모든 수단을 동원해 반격할 게 분명하다. 정치적 실력이나 도덕적 수준에서 진보를 추동하는 힘이 절대적으로 월등해야 한다”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박정희 패러다임 붕괴로 보면 안된다고 한 까닭이다. 아직도 텅 빈 대합실에 홀로 있을 때가 많다고 한 그는 “정상적인 사회를 위해 많은 고통을 치렀다. 이번 대선을 계기로 뒷걸음질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접경지대 밖에서 50년을 서성여야 했던 그가 경계인으로 맞는 마지막 대선이길 바란다.

노무현 정부 여성 비서관들이 <대통령 없이 일하기>라는 책을 냈다. 청와대를 권부가 아닌 일터로 인식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들은 “사회의 변화 방향을 국가의 이름으로 제시하는 게 대통령”이라면서도 “그 사회는 대통령이 아닌 우리의 꿈으로 끌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대통령 없이 일하기>는 청와대를 권력이 아닌 시스템으로 운영하려 했던 이들의 고군분투기다.

공저자 7명 중 균형인사비서관이 2명이나 포함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균형인사, 특히 여성인사 문제를 제도적으로 풀려 했다는 흔적이다. 대통령과 일면식도 없던 김신일 교수가 교육부총리에 발탁된 것도 시스템 인사를 지향했기에 가능했다. 해방 후 처음 시도된 국가재원배분회의, 이지원 도입 등은 시스템 국정을 대표하는 사례다. 만약 세월호 참사 때 청와대가 할 일을 했더라면 시민들은 대통령의 부재를 알았을까.

접경지대 안에서 경계(한 권력에 의존하는 정치)를 돌파하려 했던 여성 비서관들의 노력이 그저 꿈으로만 남지 않길 바란다.

20일 후면 대선이다. 후보들은 ‘든든한 국가’를 약속한다. 그러나 경계선 곳곳에선 ‘국가’를 묻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1985년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강용주씨는 보안관찰법 위반으로 세 번째 기소됐다. 보안관찰법은 군사반란·내란 등으로 3년 이상 형을 받은 사람들이 출소 뒤 3개월마다 일거수일투족을 신고하도록 규정했다. 강씨는 “국가가 대를 이어(전신 사회안전법) 시민의 기본권을 짓누르는 데 복종하지 않겠다”고 했다.

얼마 전 4·3항쟁 69주기였다. 1948년 4월 제주, 국가폭력은 냉전과 분단으로 무장한 군경토벌대를 앞세워 수만명을 쓰러뜨렸다. 4·3항쟁은 이데올로기 대립이란 덫에 갇혀 혁명으로도, 민주화운동으로도 불리지 못한 채 통곡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인혁당재건위 사건의 유족들은 무거운 마음으로 42번째 기일(4월9일)을 맞았다. 법원은 2007년 무죄를 선고했고, 2009년엔 손해배상금 지급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불과 2년 뒤 대법원은 배상금이 지나치게 많다고 판결했고, 국가는 배상금 환수 청구소송에 이어 강제환수 조치를 진행했다. 채권자 이름은 ‘대한민국’이었다.

구혜영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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