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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교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 공개가 임박했지만 국정화에 잇따라 제동이 걸리고 있다. 법원이 국정교과서 집필 과정의 불법성을 지적하고, 일부 일선학교는 교과서 채택을 거부하는 실력행사를 선언하고 나섰다. 전국의 교육감들은 어제 협의회를 열고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중단 및 폐기를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이런 반발과 혼란에도 국정교과서 정책을 강행할 것인지 교육부에 묻고 싶다.

서울행정법원은 어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조영선 변호사가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낸 역사교과서 정보 비공개 처분 취소 소송에서 “집필기준을 공개해도 집필 및 심의업무의 공정한 수행이 지장받을 것이라는 개연성이 없다”며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정부의 국정교과서 집필 과정이 불법적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불법성이 입증된 역사교과서라면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 역시 용납해선 안될 일이다. 헌정 사상 초유의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대통령과 정부 정책에 대한 시민의 분노와 불신이 극에 달한 상태에서 ‘피의자 대통령’이 추진한 교과서라는 것만으로도 국정화는 이미 교육적·윤리적 정당성을 상실했다고 볼 수 있다.

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한국사국정화저지네트워크’ 회원들이 열을 지어 국정 역사교과서 폐기를 주장하는 패널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광주시의 모든 중학교는 내년에 1학년 국정 역사교과서를 채택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중2, 3학년은 기존의 검정교과서를 그대로 사용할 것이라고 한다. 상당수 시·도 교육청도 이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내년에 중1 대상으로 국정 역사교과서를 주문하도록 일선 학교에 공문을 보냈지만 일선 학교들이 실력행사로 맞서면서 실현 가능성이 의문시된다. 시·도 교육감들은 어제 협의회에서 정부가 국정교과서를 강행한다면 모든 방안을 강구해 대처하겠다고 강력 경고했다. 내년부터 모든 중·고교에서 국정 역사교과서를 가르치겠다는 정부의 계획은 파행을 면치 못할 게 불 보듯 뻔하다.

이는 기본적으로 시민 다수가 반대하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인 정부가 자초한 것이다. 자유발행제를 채택하는 세계적 추세 속에서 국가가 지정한 단일한 역사관만을 주입하겠다는 시대착오적 역사교육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교육부는 명심해야 한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을 중단하고 포기하는 것만이 역사와 시민 앞에 죄를 짓지 않는 길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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