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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처음으로 청와대 홈페이지를 방문했다. 언론에 보도된 ‘오보 괴담 바로잡기’를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모두 11개의 글이 올라와 있는데, 첫번째 글이 ‘세월호 7시간, 대통령은 어디서 뭘 했는가?-이것이 팩트입니다’이다. 그러나 청와대의 이 해명 아닌 해명이야말로 대통령이 당장 그 직을 그만둬야 할 이유들을 확인해주고 있다.

첫번째, 이 글은 “대통령은 관저 집무실 및 경내에서 당일 30여차례의 보고와 지시를 내렸다”로 시작한다. 첫 문장이 문법적으로 틀렸지만 어지간히 급했구나 하고 넘어가자. 문제는 ‘관저 집무실 및 경내’라는 표현인데, 조금 뒤에 “청와대에는 관저 집무실, 본관 집무실, 비서동 집무실이 있으며 이날은 주로 관저 집무실을 이용”했다고 밝힌다.

대통령 집무실이 청와대 안에 3개임을 나도 처음 알게 되었지만, 대통령이 일과시간에 일할 곳은 숙소에 딸린 관저 집무실이 아닌 본관이다. 몸이 불편했다거나 하는 납득할 만한 사정이 없는 한 평일에 관저에 머문 것 자체가 잘못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어디서든 보고를 받고 지시할 수 있는 시스템”을 운운하며 대통령은 “모든 시간이 근무시간”이라고 강변한다.

이재명 성남시장의 법률대리인인 나승철 변호사가 22일 박근혜 대통령 고발장을 접수시키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들어서고 있다. 이 시장은 세월호 7시간 의혹과 관련해 박 대통령을 직무유기죄 및 업무상 과실치사죄로 고발했다. 이준헌 기자

두번째, 마음 한구석이 켕겼는지 관저에 머문 사실을 희한한 논리로 합리화한다.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와 같이 분초를 다투는 업무는 현장의 지휘 체계와 신속한 구조 활동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회의 준비를 위해 여러 사람이 움직여야 하는 경내 대면회의 대신 20~30분마다 직접 유선 등으로 상황보고를 받고 업무 지시를 했다”고 한다. 6000t급의 큰 여객선이 갑자기 침몰하는 긴박한 순간에 대통령이 보좌진과 머리를 맞대고 상황을 공유하며 바로바로 대응해야 옳을까, 아니면 참모들이 회의하느라 바쁘면 구조에 방해가 될까봐 전화 지시와 서면보고(맙소사!)에 의존하는 것이 나을까? 청와대의 해명은 한마디로 궤변이다.

세번째, 압권은 “이날의 진짜 비극은 오보에 따른 혼돈”이라는 주장이다. 계속 상황을 확인하던 대통령은 오후 2시50분 안보실장이 앞서의 보고가 잘못되었다고 전화로 알리자 바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방문을 지시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해경청장에게 전화로 철저한 구조를 지시했다는 오전 10시30분도 세월호가 이미 뒤집혀 구조가 힘들어진 때였지만, 이 시각부터 대통령이 사고의 심각성을 인지한 시각까지 헛되이 흘려버린 4시간20분이 언론에 책임을 미루며 변명해도 될 짧은 시간인가? 언론 오보부터가 국가 비상대응체제가 우왕좌왕하는 바람에 터진 일이었다. 기초적인 상식마저 무너진 논법이다.

네번째, 대통령이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시점부터 오후 5시15분 중대본에 도착하여 ‘구명조끼를 입은 학생들을 발견하기가 그렇게 힘드냐’는 엉뚱한 질문을 할 때까지 다시 2시간 이상이 흘러갔다. 중대본으로 이동하며 수행원의 스마트폰으로 뉴스나 동영상을 2~3분만 찾아봐도 나올 수 없는 발언이었다. 그런데 이에 대한 해명은 단 한 줄도 없다. 궤변에도 한계가 있음을 절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며칠 전 더불어민주당 김현미 의원은 대통령이 중대본을 떠난 후 그날 밤 내내 어떤 회의도 열리지 않았고 관련 지시도 전무했음을 예결위 정책질의에서 확인했다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썼다. 사실이라면 대통령의 심신이 적어도 그날 어떤 원인에 의해 국정을 감당할 수 없는 상태였다는 정황이 뚜렷하다. 그 원인을 숨김없이 밝혀야 한다.

해명 글의 마무리는 인용하기조차 거북하지만, 직접 홈페이지를 뒤져볼 여유가 없는 독자를 위해 그대로 옮긴다. “그러나 결국… 비극을 막지는 못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울었다.”

대통령을 변호한답시고 이런 글을 올린 참모들이 제정신이라고 볼 수 없다. 그들은 세월호 참사가 얼마나 중대한 사고인지, 희생자와 미수습자 가족들이 2년 반이 넘도록 겪어온 고통이 어떤 것인지 아직도 전혀 실감하지 못하는 듯하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해명 내용만으로도 대통령이 곧장 물러나거나 탄핵당할 명백한 사유가 된다. 정확한 진상 규명이 필요하지만, 우리는 진실 하나를 거듭 확인한다. 청와대의 오만하고 우둔한 자들은 세월호 참사 앞에 진심으로 흐느껴 울어본 적 없다는 것을. 이들은 내리막길을 달리는 ‘불타는 수레’에 기름을 붓고 있다.

김명환 서울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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