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일본 정부가 2015년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 ‘군함도’ 등 자국의 근대산업시설에서 조선인들을 강제노역시킨 사실을 숨겼다. 당시 일본은 군함도 등 7개 시설에서 조선인 수만명이 강제노역한 점을 인정하고, 그 피해자들을 기리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그런 조치에 대한 경과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이를 정면으로 뒤집었다. ‘강제 노역(forced to work)’이라고 약속한 표현 대신 “2차대전 때 국가총동원법에 따라 일본의 산업을 ‘지원(support)’한 많은 수의 한반도 출신자가 있었다”고 기술했다. 불과 2년 반 전 국제사회를 향해 했던 약속조차 뒤집은 일본 정부의 처사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7년12월6일 (출처:경향신문DB)

‘강제노역’이라는 표현은 강제징용된 조선인들의 노동을 어떻게 규정할지를 놓고 한·일 양국이 타협점을 찾은 결과다. 그 합의에 따라 일본 정부 대표는 공식회의에서 “1940년대에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조건에서 노역을 당했다”고 시인했고, “그 피해자를 기리기 위해 정보센터 설립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했다. 따라서 이를 뒤집는 것은 한국과의 약속 위반인 것은 물론 국제사회의 신뢰를 깨는 행위다. 보고서에서 확인된 일본의 약속 위반은 이뿐이 아니다. 강제징용 사실을 설명할 정보센터를 징용 현장인 규슈가 아니라 도쿄에 설치하겠다고 했다. 산업시설의 긍정적·부정적 역사를 알리라는 유네스코의 권고에 반하는 행위다. 범행 현장을 은폐하려는 치졸한 꼼수이자 역사왜곡이다. 나아가 일본은 정보센터 설립을 위해 증언과 사료 조사가 필요하다고 보고했다. 한국인 강제징용을 ‘확인된 사실’이 아닌 ‘확인해야 할 일’로 둔갑시킨 것이다. 의도적인 책임 회피로, 일본의 과거사 반성의 진정성을 의심케 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이번 보고서는 내년 개최되는 제42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검토된다. 유네스코는 두 달 전 한국과 중국 등 9개국이 공동제출한 ‘일본군 위안부 기록’의 유산 등재를 보류한 바 있다. 유네스코가 분담금을 많이 내는 일본을 두둔했다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유네스코가 일본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세계인들이 지켜볼 것이다. 한국 정부는 외교부 대변인 논평을 통해 유감을 표명하고 약속한 후속 조치를 조속히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더 강력한 비판이 필요하다. 강경화 외교장관의 방일 등을 통해 반드시 일본 측의 시정조치를 이끌어내야 한다. 일본은 이렇게 약속을 뒤집으면서 한국을 향해 위안부 문제 합의를 지키라고 할 자격이 있는지부터 자문해야 한다.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