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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달력을 떼어내다가 ‘이게 뭐지’ 하고 들여다본다.

12월20일이 공휴일이다. 자세히 보니 빨간 글씨로 ‘19대 대통령 선거일’이라고 쓰여 있다. 나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린다.

1년 전, 광장의 촛불이 없었다면 이날 선거를 해야 하는 것이었구나! 지금쯤 나라가 얼마나 시끄러웠을까?

우리는 역사를 흔히 거대한 강물, 대하(大河)에 비유한다. 거대한 강물은 겉보기엔 유유자적하는 것 같지만 밑바닥에선 끊임없이 급류와 역류, 소용돌이가 꿈틀댄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평온하게 흐르는 것 같지만 저변에서는 또 어떤 혁명이나 반역이 잉태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작년 가을까지만 해도 역사의 강물은 평화롭게 유유자적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밑바닥에서 꿈틀대던 역류는 순식간에 촛불광장을 통해 분출하면서 모든 것을 일거에 흔들고 뒤집어 삼켜버렸다.

이런 극적인 순간이 아니더라도 거대한 강은 저변을 흐르는 급류와 역류 덕분에 풍요의 원천이 될 수 있다. 대하의 흐름을 거스르는 역류와 소용돌이가 오히려 풍부한 자양분을 만들어내어 물고기를 살찌우고, 주변의 문명은 그것을 먹고 번성한다.

역사에서도 역류와 소용돌이는 인간사를 풍요롭게 하는 자양분인 새로운 사상과 시대조류를 만들어낸다. 이것들은 물속에 잠잠히 있으면서 서서히 양적으로 몸을 키우다가 어느 순간 폭발하여 질적 변화를 만들어낸다. 이렇듯이 변하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밑바닥에서는 끊임없이 변하고, 극적인 혁신이 오는 것 같다가도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는 것이 역사임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2017년이 저물어가는 이 시점에, 지난겨울 전국에서 치솟아 오른 급류와 역류의 메시지는 무엇이었던가를 다시 생각해본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매일매일의 일상 속 민주주의’를 위해 사회적 생태계를 총체적으로 혁신하자는 것이었다.

더 이상은 87년체제에 안주하여 살아갈 수 없다는 것, 선거철에나 한 표를 행사하는 정도의 미적지근한 참여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것, 사회 요소요소를 썩어문드러지게 만들고 있는 크고 작은 적폐들을 더 이상은 짊어지고 갈 수 없다는 것, 입시제도 등 시스템의 문제로 처절한 불행에 시달리고 있는 아이들을 ‘너희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는 달콤한 포장으로 계속 기만할 수는 없다는 것, 하루벌이와 불안정한 고용으로 극한의 불안장애와 막장심리로 살아가고 있는 일용직과 임시직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것, 농사꾼의 자식은 노가다가 되고 노가다의 자식은 임시직 노동자가 되는 가난의 대물림을 계속 이어갈 수는 없다는 것, 더 이상은 강대국 사이에 끼어 전쟁의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며 살 수는 없다는 것 등이었다.

그러나 정치권은 아직 이 거대한 의미를 읽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다수의 국민이 이해하고 있는 것을 읽어내지 못하는 것은 통찰력의 부족 때문인가, 아니면 이해관계의 차이 때문인가? 예를 들어 우리 삶의 토대를 바꾸는 근본적 혁신을 위해서 국민 주도의 헌법 개정이 제안되었지만, 국민이 주도하는 헌법 개정은 시기적으로 이미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촛불이 제시한 거대 담론에 대해서 정치권은 여전히 과거의 사고틀과 잣대를 들이대고, 자잘한 미시적 수준의 대응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7년 우리에게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 기대한 만큼의 거대한 혁신이 오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인가, 혹은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는 것인가? 70%대의 지지율이면 족한 것인가? 수많은 민원들이 각 부처 대신에 청와대로 직접 몰려드는 현상이 즐길 만한 것인가?

2017년은 준비의 시간이었다고 치자. 그러나 다가오는 2018년엔 ‘매일매일의 일상 속 민주주의’를 위해 사회적 생태계를 총체적으로 재설계하는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신좌섭 | 서울대 의대 교수·의학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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