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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은행 브로커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비롯해 위장전입, 아들 병역 특혜 등 온갖 비리 의혹이 불거져 국회 임명동의를 받지 못하고 있던 검찰 출신 김병화 대법관 후보자가 결국 스스로 물러났다. 김 후보자는 그제 ‘사퇴에 즈음하여’라는 문건을 통해 “제가 사퇴하는 것이 대법관 구성 지연이라는 국가적 문제를 풀고 국가에 마지막으로 헌신하는 길”이라고 밝혔다. 탁월한 법률 지식뿐만 아니라 고도의 도덕성과 윤리의식이 요구되는 대법관이라는 자리를 ‘비리 공직자의 마지막 보신처’쯤으로 욕되게 하는 등 온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놓고서야 ‘국가적 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는 것인지 안타깝기만 하다. 그러나 그의 사퇴로 ‘최악의 대법관’이 등장하는 일은 막게 됐다는 점에서 만시지탄이지만 사필귀정인 셈이다.

국회 인사청문제도가 생긴 뒤 최초로 낙마한 대법관 후보자를 낳은 ‘김병화 사태’는 의미있는 교훈을 남겼다. 적어도 국회의 인사청문회나 임명동의를 거쳐야 하는 고위 공직 후보자가 심각한 비리 의혹이 있거나 뚜렷한 흠결이 있다면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김 후보자의 경우 ‘친정’인 검찰이 연일 지원사격을 하고, ‘친정 아버지’ 격인 권재진 법무부 장관까지 앞장서서 비호했지만 저축은행 수사 개입 대가로 금품을 받았다는 의혹까지 불거진 그를 보호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일반 여론과 야당은 물론 여당 지도부와 판사들까지도 ‘김병화는 절대 안된다’며 고개를 내저었기 때문이다.

 

11일 국회에서 열린 대법관 후보자 임명동의를 인사청문회에 참석한 김병화 후보자가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이번 사태를 촉발했다고 할 수 있는 권재진 장관은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 우선 권 장관은 검찰 몫으로 배정됐다고는 하지만 능력과 품성이 함께 요구되는 대법관 자리에 고교·대학 후배인 김 후보자를 내세웠다. 이후 김 후보자를 둘러싼 심각한 비리 의혹이 ‘종합선물세트’처럼 한꺼번에 드러나 여당에서도 ‘김병화 불가론’이 들끓고 있는데도 권 장관은 “그 정도 하자라면 대법관 후보로서 손색이 없다”는 어처구니없는 발언까지 일삼았다. 도대체 어느 정도의 하자라야 문제가 된다는 것인지 그의 상식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장관이 추천한 대법관 후보자가 이 같은 결말을 맞는 것은 필연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제 김 후보자의 빈자리에는 능력과 인품, 도덕성과 윤리의식을 함께 갖춘 인물을 추천해야 한다. ‘남성·고위 법관’이라는 대법관의 주류(主流)를 벗어나 여성이나 재야 변호사 등을 추천함으로써 대법관의 인적 구성을 다양화하고 정치·경제·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 ‘대법관 검찰 몫 배정’이라는 불합리한 관행도 이번을 계기로 없애야 마땅하다. 법조 관계자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의 인적 구성 자체를 다양화하고, 미국처럼 대법관 후보자의 국회 검증·인준 기간을 충분히 설정함으로써 ‘제2, 제3의 김병화’를 사전에 걸러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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