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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청와대 문건 유출 혐의를 받고 있는 경찰관 2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통상 법원은 구속영장을 기각할 때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사유를 들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서울중앙지법은 “범죄 혐의 소명 정도 등에 비춰볼 때 현 단계에서 구속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쉽게 말해, 검찰 수사가 엉터리여서 혐의를 입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윤회씨 국정개입 의혹’의 본류는 내팽개치고 지류인 문건 유출에만 집중해오던 검찰은 처음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수사에 제동이 걸리게 됐다. 문건 내용은 “찌라시”, 유출 행위는 “국기문란”이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가이드라인’만 따르다가 망신살을 자초한 셈이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검찰이 서울경찰청 정보분실 소속 최모·한모 경위에게 적용한 혐의는 공무상 비밀누설이었다. 청와대 파견근무 후 복귀한 박관천 경정이 보관해오던 문건을 몰래 복사해 복수의 언론사와 대기업에 건넸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그러나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영장 기각은 어찌 보면 예견된 결과라 할 수 있다. 검찰은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 등 ‘문고리 3인방’조차 조사하지 않은 채 문건을 ‘허위’로 결론짓고 유출자를 색출해내는 데만 바빴다. 과정이 부실하니 결과도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검찰 관계자는 영장 기각을 두고 “청구하는 사람(검사)과 발부를 결정하는 사람(판사)의 판단에 차이가 있는 것 같다”며 의연한 척했다고 한다. 딱하고 민망하다.

최모·한모 경위 영장 기각 서울경찰청 정보1분실 소속 최모·한모 경위가 박관천 경정이 반출한 청와대 문건을 복사해 외부로 유출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가 12일 오전 기각되자 교도관의 안내를 받으며 경기 의왕시 포일동 서울구치소 밖으로 나서고 있다. _ 연합뉴스


최근 검찰의 무리수가 빚은 영장 기각 사례는 한두 건이 아니다. 검찰은 지난 10월 대리기사 폭행사건에 연루된 세월호 유가족 3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모두 기각됐다. 당시 검찰은 내규로 정해놓은 영장 청구 기준마저 무시하고 과잉수사를 했다가 체면만 구겼다. 앞서 9월에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시국선언을 주도한 혐의로 김정훈 전교조 위원장 등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가 역시 기각당했다. 이러니 ‘정치검찰’이란 오명을 떨치지 못하는 것 아닌가.

검사들은 ‘수사는 생물’이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 수사를 하다보면 생각 못한 사안이 돌출해 수사 방향이 바뀌기도 한다는 말이다. 가이드라인에 맞춘 수사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검찰은 본말이 전도된 ‘정윤회씨 의혹’ 수사를 이제라도 정상으로 되돌려야 한다. 의혹을 신속히 털어내라는 청와대 주문 따위는 잊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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