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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청와대, 새누리당이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사건을 ‘종북세력’의 소행으로 규정하고 배후를 파헤칠 것이라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 사람(피의자 김기종씨)이 단독으로 했는지 배후가 있는지 철저히 밝혀야 한다”며 배후세력을 거론했다. 검찰과 경찰은 대규모 수사팀을 구성해 국가보안법 위반 여부 및 배후 수사에 착수했다. ‘단독 범행’이라는 김기종씨 주장을 뒤엎을 만한 정황이 나오지 않았는데도 수사 타깃이 ‘배후’로 확대된 것이다. 정권 전체가 똘똘 뭉쳐 ‘종북 공세’에 나선 형국이다.

어제 당·정·청 고위협의회에서 오간 언사들은 집권세력의 인식을 여실히 드러낸다.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헌법가치 부정 세력”을 언급했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한·미동맹의 심장을 겨눴다”고 했다. 검경은 김씨가 7차례 방북했고, 서울에 김정일 분향소를 설치하려 했으며,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자는 주장을 해온 것을 근거로 대공 용의점을 수사 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방북은 통일부 승인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고, 평화협정 대체론은 김씨 외에도 다수의 학계·시민사회 인사들이 제기해온 주장이다. 검경의 논리대로라면 수많은 사람들이 잠재적 ‘국가보안법 피의자’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김씨의 피의사실도 확정되지 않았는데 적용 법조(法條)부터 거론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공격한 혐의로 체포된 김기종씨가 6일 법원의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휠체어에 탄 채 서울 종로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출처 : 경향DB)


박근혜 정권의 종북몰이는 낯설지 않다.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이 터지자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했고, 트위터 여론조작 등 추가 의혹이 제기되자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로 국면을 전환했다. 이번에는 대통령 지지율 추락이라는 악재를 돌파하고, 정국 주도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겠다는 의도로 의심할 만하다. 그러나 국내정치에 눈이 어두워 더 중요한 국익을 놓치는 소탐대실(小貪大失)은 없어야 한다. 정작 ‘피해자’인 미국은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은가. 박 대통령은 이번 사건을 “한·미동맹에 대한 공격”으로 규정했지만 미 국무부는 “한·미동맹은 강고하다. 우리는 분별없는 폭력행위에 위축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미 언론도 피습사건을 보도하며 “테러” 대신 “공격”이나 “폭력”이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극단주의자의 돌출적 난동’ 정도로 축소하는 기류가 짙다고 한다.

정부와 여당이 한·미동맹 훼손을 진정 우려한다면 미국의 입장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게 옳다. 진상은 반드시 규명해야 하지만, 사건을 과도하게 키우려 했다가는 오히려 동맹관계를 해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폭력과 극단주의가 해법이 아니듯, 시민의 자유를 옥죄는 공안몰이도 해법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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