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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직 중의 사법농단에 연루돼 김명수 대법원장이 징계를 청구한 법관 13명 가운데 5명이 징계를 면했다. 나머지 8명의 징계 수위도 정직 6개월~견책의 솜방망이 수준에 그쳤다. 법관에 대한 징계는 최대 정직 1년까지 가능하다. 대법원은 6개월 넘게 징계 결정을 미루더니 사실상의 ‘셀프 면죄부’를 줬다. 그동안 법원의 행태에 비춰볼 때 전혀 예상 못한 바는 아니지만, 이 정도로 후안무치할 줄은 몰랐다.

대법원 법관징계위원회는 지난 17일 징계 심의를 마치고 이규진·이민걸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각각 정직 6개월, 방창현 대전지법 부장판사를 정직 3개월에 처하기로 의결했다. 이들 3인은 모두 재판거래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사법농단 당시 법원행정처 심의관으로 근무하며 각종 문건을 작성한 박상언·정다주·김민수·시진국 부장판사에게는 각각 감봉 처분이 내려졌다. 역시 심의관으로 근무했던 문성호 판사는 견책을 받게 됐다. 2명은 징계사유가 인정되나 징계를 하지 않는 ‘불문’에 부쳐졌고 3명은 아예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 12월 19일 (출처:경향신문DB)

“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감수하고 징계 절차에 회부했다.” 지난 6월 김 대법원장이 법관 13명에 대한 징계를 청구하며 한 말이다. “살을 도려내는 아픔”의 결과가 고작 이 정도인가. 재판거래 의혹이 드러나기 전인 지난해 8월 이규진 부장판사는 국제인권법연구회 와해 시도로 감봉 4개월 징계를 받았다. 당시 대법원장은 양승태였다. 그런데 이번에 김모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국제인권법연구회 대응방안 수립에 관여한 혐의가 드러났음에도 징계를 받지 않았다. ‘양승태 대법원’에서도 징계받은 사안이 ‘김명수 대법원’에서 징계를 면하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법원은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에 영장 기각으로 일관하더니, 자체 징계조차 어물쩍 넘어가려 하고 있다. 직무상 위헌행위를 저지른 법관들이 계속 법대(法臺)에 앉아 판결을 내리겠다는 것이다. 주권자의 대표인 국회가 이를 용인해선 안된다. 국회는 조속히 탄핵소추 절차에 착수해야 한다. 검찰이 사법농단 연루 법관들을 재판에 넘길 때까지 미룰 일이 아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사례에서 보듯 형사재판과 탄핵심판은 별개 사안이다. 법원을 현대판 소도(蘇塗·삼한시대 죄인이 도피해도 잡지 않았던 신성지역)로 방치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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