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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유착의 끝판왕’이라고 불릴 만하다. 경남기업이 금융당국과 금융계를 쥐락펴락한 데 이어 이번에는 대통령의 해외 행사까지 기업 연명 도구로 활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과정에서 드러난 ‘약자에 강하고, 강자에 약한’ 금융권의 민낯은 한심스러울 정도다. 정치권의 검은돈 수수와 별개로 금융유착 근절을 위해서도 경남기업의 뒷거래는 규명돼야 한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성완종 전 회장이 운영하던 경남기업은 2013년 9월 베트남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한복 차림으로 무대 위를 걷는 한복쇼를 자사 현지 건물인 ‘랜드마크 72’에 유치했다. 당시 성 전 회장은 선거법 위반 혐의로 의원직 상실과 관련한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었고, 경남기업 역시 재정 악화로 3차 워크아웃을 앞둔 터였다. 당시 한복쇼 행사 장소는 청와대가 결정했다고 한다. 성 전 회장 입장에서는 대통령 패션쇼의 유치만으로도 힘을 과시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기실 성 전 회장은 패션쇼를 전후해 대통령 비서실장은 물론 금융당국 수장, 워크아웃 담당 국장, 채권단 최고경영자들을 잇따라 만났다. 경남기업은 한복쇼 한 달 뒤 워크아웃을 신청하지만 하루 만에 채권단의 자금지원 결정을 받아낸다. 워크아웃을 신청하면 채권단이 지원을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는 통상적인 방식과는 전혀 다른 접근법이다. 신한은행 같은 곳은 아예 워크아웃 직전에 900억원을 추가 대출해 줄 정도였다. 대주주 감자 같은 채권단 지원 조건도 없었다. 오히려 기업 회생 시 주식을 우선 매수할 수 있는 권리까지 넘겨줬다. 누가 봐도 납득하기 어려운 사안들이다.

jtbc가 15일 <뉴스룸> 2부에서 경향신문의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단독 인터뷰 녹음파일을 유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단 방송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하지만 결국 경남기업은 회생이 어려워지면서 법정관리로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금융권 손실만 수출입은행 5207억원 등 총 1조3000억원이다. 회수 가능 금액은 20%도 안돼 1조원 이상을 국민 세금과 은행 고객들이 메워야 할 판이다. 성 전 회장은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이었다. 국회 정무위원들이 금융당국과 금융권에 ‘절대 갑’이라는 것은 새삼스럽지 않다. 직무연관성이 있는 정치인이 해당 운영위에 배속돼 퇴출돼야 마땅한 좀비 기업을 힘으로 연명시키는 후진적 행태가 벌어진 셈이다. 이러고도 금융산업 경쟁력 운운할 수 있는 건지 낯간지럽다. 경남기업 부당 지원에 누가 관여했고, 청탁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가려내 책임을 물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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