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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발표된
경북대 산학협력단의 문화재청 용역 연구보고서는 ‘증도가자(證道歌字)’ 논쟁을 종식시킬 것 같은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증도가자’
활자에 묻은 먹에 대한 탄소연대 측정 결과 1033~1155년에 사용됐음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는 기존 한국지질자원연구원과
일본의 팔레오 라보, 서울대 기초과학공동기기원 등에서 몇 차례 실시한 연대 측정값과 큰 차이(13세기 혹은 1150~1300년
등)가 없었다. 국내는 물론 해외(일본)의 권위있는 기관들의 일관된 측정값이었던 것이다. ‘증도가자’는
<직지심체요절>(1377년 제작)보다 70~200년 앞서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일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그런데도 논쟁이 끝나기는커녕 더욱 커졌다. 그 책임은 전적으로 문화재청에 있었다. 용역을 맡은 경북대팀은 2010년 어느
고미술상이 소장한 ‘증도가자’들이 진품임을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경북대팀은 당시 활자 일부의 서체와 크기가
<남명천화상송증도가>(보물 758호)의 목판본 글자와 동일하고, 탄소연대 측정 결과도 <직지>보다 적어도
138년 앞선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학계 일각에서는 출처와 입수 경위가 불분명하다며 의문을 제기해왔다. 그런데도 문화재청이 논쟁의
한 축을 이끌어간 팀에 용역을 맡겨 중립성 논란을 자초한 것이다. 뒤늦게나마 문화재청이 직접 나서 문화재 지정 절차에 착수한다는
등의 대책을 세웠지만 혼란을 부추겼다는 비난을 면하기는 힘들다. 이번 ‘증도가자’ 논쟁은 고미술계 내부의 뿌리 깊은 불신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중론이다. 오죽했으면 과학적인 연대 측정값이 일관되게 나오는데도 ‘고려시대 사용한 먹을 누군가 활자에 칠했을 수도
있지 않느냐’는 말까지 나올까.
서울 인사동 다보성미술관에서 2일 현존 最古 금속활자 목판인쇄물인 직지심체요절보다 최소 138년 이상 빠른 最古금속활자로 추정되는 활자인 <證道歌字>를 공개돼 관심을 끌고 있다. (출처 : 경향DB)
그러나 ‘증도가자’는 학계 내부 혹은 학자 간 감정싸움이나 논쟁의 주제로만 끝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세계 인쇄의 역사를
뒤바꿔 놓을 수도 있는 중차대한 사안이 아닌가. 혹여 공명심에 사로잡혀 공공의 연구에 소홀하거나, 개인 감정에 사로잡혀 사사건건
남의 연구결과에 트집을 잡아서도 안되겠다. 이왕 정부가 나서 문화재 지정 절차에 나선 만큼 관련 분야 전문가들을 망라한
객관적·중립적 검증단을 구성하길 바란다. 필요하다면 객관성 확보를 위해 해외 유수 전문가의 참여도 적극 고려해 볼 수 있겠다.
가짜가 진짜로 둔갑해서도 안되지만, 진짜를 가짜로 바꿔놓는다면 이 또한 씻을 수 없는 죄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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