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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명의 청년 비정규직 하청노동자가 홀로 작업 중 목숨을 잃었다. 지난 11일 새벽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현장운전원 김용균씨(24)가 석탄운송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숨진 채 발견됐다. 김씨는 발전소 운영을 담당하는 하청 민간회사인 한국발전기술 소속 계약직으로, 입사한 지 3개월밖에 안됐다. 10일 오후 6시30분 근무에 투입돼 11일 오전 7시30분까지 혼자서 4~5㎞를 순찰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이날 청와대 앞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대표 100인과 만납시다’ 기자회견에서는 김씨가 비정규직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찍은 인증샷이 공개돼 안타까움을 더해주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 12월 13일 (출처:경향신문DB)

2010년 이후 태안화력발전소에서만 12명의 하청노동자가 사고로 숨졌다고 한다. 2012~2016년 346건의 사고로 전국의 발전소 노동자들이 다치거나 죽었는데, 이 중 97%(337건)가 하청노동자 업무에서 발생했다. 하청노동자들의 희생이 많은 것은 발전 공기업들이 최저가로 낙찰된 민간 하청업체에 일을 맡기기 때문이다. 김씨가 속한 회사도 원래는 발전소와 같은 공기업이었지만 2014년 민영화됐다. 김씨가 과거 정규직들이 했던 것처럼 2인1조로 근무했다면 동료가 기계를 멈춰 끔찍한 사고를 당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발전 공기업들은 하청노동자들의 일이 ‘필수유지업무’가 아니라며 공공부문 정규직화 방침을 거부하고 있다. 그사이 하청노동자들의 죽음은 계속되고 있고, 노동자들은 “정규직 안 해도 좋다. 더 이상 죽지만 않게 해달라”고 호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고용노동부는 발전소가 안전관리 규정을 지켰는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들의 생명·안전과 직결되는 발전소 운전·정비 업무의 정규직 전환에 적극 나서야 한다.

11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대표 100인과 만납시다’ 기자회견에서 발전노동자가 이날 새벽 사고로 숨진 하청노동자에 대해 이야기한 뒤 울먹이고 있다. 이상훈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5월 취임 후 첫 업무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했지만 비정규직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8월 현재 비정규직이 전체 임금노동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3.0%로 지난해(32.9%)보다 높아졌다. 정규직 임금은 1년 전보다 5.5% 늘어난 반면 비정규직은 4.8% 증가에 그쳐 임금 격차는 더욱 커졌다.

정부는 비정규직 문제를 총체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정규직 전환도 시급하지만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아래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를 없애는 일도 중요하다. 아울러 해고되고 실직한 노동자들의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사회안전망 구축도 절실하다. 노사와 정부·정치권이 머리를 맞대 ‘죽음의 외주화’ ‘죽음의 비정규직화’를 막을 방도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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