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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이 지금 싸우는 상대는 이른바 친노동 정부다. 인천공항 정규직 전환으로 대통령 직무를 시작한, 바로 그 ‘노동존중’ 정부다. 그래서인지 시민들은 문재인 정부를, 민주노총이 협력할 대상으로 인식할 뿐 투쟁할 상대로 보지 않는다.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로 사회경제 문제를 함께 풀기를 시민들은 바란다. 그렇지 않아도 경제 사정이 나쁜데 정부를 몰아세우기만 하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겠느냐는 여론도 있다. 민주노총을 향한 세상의 시선은 대체로 차갑다.

민주노총이 자칫 정부와 맞서다 견제도 제대로 못한 채 시민으로부터 고립되는 역효과가 날 수 있는 상황이다. 고임금을 받는 기득권 귀족노조가 파업은 빈번하게 한다는 게 민주노총에 관한 고정된 이미지다. 헐뜯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민주노총은 사회 양극화에 일정한 책임이 있다. 대기업 노조의 강력한 교섭력으로 임금을 계속 올리면서 주변부 노동자와의 격차를 벌려왔다. 그로 인해 노조가 강할수록 노동시장의 불평등이 심화되는 역설이 생겼다. 그렇다면 노·정 갈등은 전적으로 민주노총 책임인가? 마침 변호사, 고등학교 교장과 함께 저녁 하는 자리가 있어 물어봤다. 변호사는 정부 잘못이라고 했다. “민주노총이 얻을 게 없는데 왜 대화하나?” 교장은 민주노총 잘못이라고 반박했다. “대화 가능한 정부가 등장했는데도 싸우기만 하면 어쩌자는 거지?” 후배 기자 세 명과 술 먹는 자리에서도 물었다. 한 명은 민주노총 잘못, 다른 한 명은 정부 잘못, 나머지 한 명은 모르겠다고 했다. 노동 문제를 전공하는 두 명의 교수에게 전화를 했다. 한 교수는 굳이 따지자면 민주노총 잘못이라고 했다. 다른 교수는 따질 것도 없이 정부 책임이라고 했다.

이렇게 양분된 건 우연이겠지만, 의견은 나뉜다. 사실 정부와 민주노총 모두 자기 행동을 정당화할 이유도 있고, 갈등을 일으킨 책임을 함께 져야 할 이유도 있다. 그럼에도 여야, 청와대·정부는 한목소리로 민주노총을 비난한다. 사사건건 충돌하던 여야가 ‘민주노총만 마음을 고쳐먹으면 만사 해결’이라는 데 합의라도 한 것 같다. 한국은 대화와 협상에 익숙한 사회가 아니다. 여야 모두에 대화는 어렵고, 대결은 쉽다. 문재인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야당과 대화해야 한다는 지적을 수없이 듣지만 대화를 어려워한다.

정치권의 대결 성향은 사회에 그대로 반영된다. 민주노총이 대화할 줄 모른다고 하는 건 사돈 남 말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특히 정부가 일을 그르쳤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탄력근로제 확대와 같은 민감 사안을 일방 결정하고는 이에 반발하는 민주노총을 공격했다. 사회적 대화를 하려는 태도로 보기 어려웠다. 파업에 직면하고 나서야 문 대통령은 탄력근로제 확대를 논의할 시간을 갖자고 수정했다. 민주노총에 돌을 던질 수 있지만 그 돌, 혼자 맞을 일은 아니다. 민주노총이 대기업 노조만을 위해 활동했던 것도 아니다. 조합원 25%가 비정규직이다. 민주노총은 비정규직을 전국적으로 조직한 유일한 세력이자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앞장선 비정규직 대표조직이다. 탄력근로 문제도 대기업과는 무관한 미조직 노동자의 일이다.

최근 비난받는 민주노총 활동의 대부분도 자기 이익이 아닌, 노조 밖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것이다. 그런 활동을 두고 민주노총의 기득권 때문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것은 정직하지 못한 자세다. 요즘 민주노총이 한국 사회를 흔들며 힘을 과시하는 것처럼 회자되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힘이 없어서 그런 것이다. 노사정 협상은 보통 노(勞)가 임금 억제, 노동 유연성을 받아들이고, 사(使)와 정(政)은 사회안전망을 제공하고, 사회개혁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1998년 첫 사회협약을 제외한 4차례 대화는 모두 실패했다. 첫 협약도 민주노총 입장에서는 받은 게 없는 실패작이었다. 힘의 불균형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강자들의 링 위에 올라갈 자신이 없다.

이 역학관계의 본질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민주노총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타협한다 치자. 그래도 이행 여부는 다른 문제다. 대결정치 때문에 국회통과를 장담할 수 없다. 청와대와 여야가 거래의 공정성, 이행을 담보하지 않는 한 민주노총이 돌아오기도 어렵고, 돌아와도 성과를 낼 수 없다. 민주노총 조직률은 4%다. 96%를 책임진 세력의 책임은 묻지 않는, 4% 때리기는 균형을 잃은 것이다. 진짜 힘 있는 세력은 조용히 일을 처리한다. 소리 없이 지배한다. 바로 자본이다. 자본은 정부를 움직여 노동을 통제한다. 진정한 질문은 이것이다. 자본과 노동 가운데 누가 기득권인가? 변화해야 할 쪽은 자본인가, 노동인가?

<이대근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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