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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지계(百年
之計)란 말이 있다. 눈앞의 이익이 아니라 100년 앞을 내다보고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불멸의 금언이다. 그런데 황우여 교육부
장관의 최근 언급은 과연 ‘100년 계획을 세우는’ 부처 수장으로서 할 이야기인지 귀를 의심케 한다. 황 장관은 그제 대학생들을
만난 자리에서 “취업 문제를 먼저 해결한 다음에, 취업에 필요한 소양으로서의 인문학과, 자기계발을 위한 인문학을 생각해야 한다”며
‘인문학보다 취업이 우선’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청년고용률이 24%에 불과한 것에 장관으로서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고도
했다. 황 장관은 지난달 27일 “이제 취업 중심의 교육제도로 재조정해야 한다”고 대학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물론
황 장관의 발언은 취업난에 고통받는 학생들을 향한 걱정과 고민이 담긴 얘기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인문학 타령’ 하지 말고
취업에만 신경 쓰라는 식의 발언은 대학을 직업양성소로 취급한다는 얘기로 들릴 수밖에 없다.
주지하다시피 인문학은 ‘생각을 통해’ 인간의 가치를 탐구하는 기초학문이다. 한동안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실용적 가치와 신자유주의의
효율성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시됐지만 최근 인문학의 가치가 재발견되고 있다. 시민들이 다시 인문학을 찾고 기업도 인문학에 눈을
돌리고 있다. 애플 신화를 이룬 스티브 잡스는 “인문학이 기술과 결합할 때,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결과가 창조된다”고 했다.
애플은 물론 구글이나 IBM 등 IT산업을 선도하는 기업들도 인문학 전공자들을 우대하고 주요 부서에 배치하고 있다. 국내
기업에서도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한국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교육 현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황 장관은 '수능과 EBS의 연계율을 낮출수 있느냐'는 질문에 "지금 70%를 너무 고정적으로 하지 않고 수능체제 개편과 맞물려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_ 연합뉴스
물론 이런 인문학 붐이 이 사회 전체가 인문학의 깊이와 향기를 향유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여전히 기술과 기업의 포장용으로
동원되는 한계가 있다. 아직 인문학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결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문학이 더욱 풍성하게 열매를 맺도록
장려해야 할 책무가 교육 정책을 총괄하는 황 장관에게 있는 것이다. 대학에서 인문학의 가치를 마음껏 호흡한 건강한 시민이 사회로
진출, 기업의 발전에도 기여하도록 교육 정책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건 대학의 본령일 뿐 아니라, 기업을 포함한 이 사회의
발전이라는 실용적 목적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황 장관의 말대로 사회적인 수요와 졸업생 수 사이의 괴리 등 구조적인 문제점을 살피는
일도 필요하다. 그러나 일국의 교육 수장이라면 취업 사관학교로 변질되는 대학 교육을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지 고민하는 게
우선이다. 그것이 오늘날 한국 교육의 고질적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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