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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국무총리가 7일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를 주재하면서 “청와대가 나서서 (최저임금 인상 효과 논란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거나 방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그렇게 되지 않도록 각 부처가 더 적극적으로 임해 달라”고 말했다.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 등 관계부처가 나서 노동정책 변화에 대해 국민께 설명하라는 주문도 했다.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둘러싸고 김동연 부총리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간 이견이 부각되고,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보고서 내용까지 논란이 되자 내각의 역할을 독려한 것이다. 그동안 내각의 역할과 기강을 강조해온 이 총리의 지적은 타당하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최저임금 현실화, 노동시간 단축 등은 당면 최대 현안이다. 경제·산업은 물론 노동·복지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복잡하게 얽힌 데다 시민생활과 기업 등에 미치는 영향이 심대해 세밀한 설계와 조율이 필요하다. 특히 최저임금 인상은 소득주도 성장을 내건 현 정부의 대표 정책이다. 시행 과정에서의 진통도 예상된 바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정책을 연착륙시키는 책임을 맡은 정부가 무엇을 했는지 시민들은 알지 못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면 더 적극적으로 대응했어야 마땅하다. 시민들은 최저임금 인상이 소득을 늘리기는커녕 일자리와 임금을 줄인다는 재계나 보수세력의 이견에 대해 장차관으로부터 설득력 있는 설명을 들어본 적이 없다.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둘러싼 대립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무슨 노력을 했는지, 또 장 실장과 김 부총리는 지금까지 무엇을 하다 최저임금 인상이 미칠 파장에 이견을 보이는 것인지 묻고 싶다.

국가 정책은 당과 정부와 청와대 3자가 조율해가며 운용한다. 여당이 민심을 들어 정책의 큰 줄기를 잡으면, 정부는 그 정책을 구체적으로 입안·실행한다. 청와대가 당과 정부 입장을 조정하고, 당은 국회 입법과정을 책임진다. 그 나머지 시민과 시장의 여론을 듣고, 부정확한 주장을 바로잡는 것이 다 정부가 할 일이다. 내각에 방대한 인력과 조직, 예산을 주는 것은 이 때문이다. 최저임금제 논란은 하나의 전조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다. 주 52시간 노동 시행을 보면 이 말이 기우가 아닐 수 있다는 불안감이 든다. 민간 기업과 노동자들은 새로운 환경에 어떻게 적응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데 정부의 역할은 눈에 띄지 않는다.

내각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은 갑자기 나온 게 아니다.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는데 외교부와 통일부가 보이지 않고, 미투 운동에서 여성가족부와 법무부의 존재감이 없었다. 30년 만에 조성된 개헌 정국에서 정부 개헌안은 법무부 장관이 아닌 청와대 민정수석이 입안을 주도했고, 국민투표법 개정을 촉구한 것도 여당이 아닌 대통령비서실장이었다. 장관 발언을 청와대가 뒤집은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내각의 존재를 약화한 것은 청와대가 자초한 일이다. 청와대가 만기친람하는데 내각이 적극적으로 나설 수가 없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차제에 청와대가 아닌 내각이 국정운영의 중심이 되도록 정부운영 방식을 정상화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내각과 장관 중심의 국정운영을 약속했다. 정부가 오로지 대통령 인기에만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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