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노동자들의 고통을 어루만지기 위해 전국의 시민들이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 영도의 한진중 조선소로 향했던 것이 11일로 1년을 맞는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조선소 크레인에 올라가서 309일 동안 농성하다가 내려올 때까지 펼쳐진 갖가지 일들은 한국사회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한편의 감동적인 드라마였다.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희망버스를 타고 조선소로 달려간 전국의 이름없는 시민들은 직업적 운동가도, 명망가도 아닌 그야말로 평범한 생활인들이었다. 그러나 해고노동자들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 이들은 보수언론을 비롯한 수구극우세력들의 비아냥과 색깔 공세에 무릎꿇지 않고 강인하고도 아름다운 연대의 불꽃을 피워 올렸다. 시민들의 각성과 투쟁은 마침내 여야 정치권을 움직여 조남호 회장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청문회 출석과 국회 권고안이라는 성과를 이끌어냈으며, 독일의 현직 대통령을 포함한 해외의 저명한 정치인·지식인들까지도 김진숙과 희망버스에 힘을 보탰던 것이다. 



(경향신문DB)



‘희망버스’가 처음 출발한 지 1년, ‘희망버스’ 시민들의 노력으로 한진중 사태가 타결된 지 7개월이 지났지만 작금의 상황은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다. 한진중 사측은 해고자 1년 내 재고용 및 생활지원금 지급, 고소·고발 취하 등 노조와 합의했던 사항들을 거의 지키지 않고 있다. 오히려 언죽번죽 정리해고 의사를 내비치는가 하면 최대주주인 조 회장 일가에게 34억원의 배당금을 지급하는 등 예의 도덕적 일탈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 한진중 바깥의 상황도 ‘희망’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수사당국은 희망버스에 탔던 시민들에게 형사소추, 벌금과 손해배상 청구 등 각종 민형사상의 압박을 가하고 있으며, 정리해고 문제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한진중 사태를 계기로 정당성 없는 정리해고에 제동이 걸리기를 기대했지만 지난해에만 전국 48개 사업장에서 2225명을 해고하겠다고 정부에 신고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희망버스 1년’은 희망이라기보다는 절망에 가까운 셈이다. 


이처럼 ‘희망버스 1년’을 맞은 지금의 사회적 상황이 아무리 갑갑하다 하더라도 희망의 노래를 멈출 수는 없다. 따지고 보면 희망버스를 통해 우리 사회가 얻은 것은 한진중 해고노동자 복직 약속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 연대와 소통의 고귀함 등 우리가 평소 입으로는 당연히 지향해야 한다고 되뇌지만 정작 매일의 일상에서는 까맣게 잊고 지냈던 소중한 가치를 재발견하고 실천한 일이었다. 애써 찾아낸 이러한 가치들을 당장 눈앞의 상황이 어렵고 암울하다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다. 그리하여 한진중 사측에는 다시금 약속 이행을 강력히 촉구하자. 정치권을 향해서는 정리해고 관련 법률을 정비하라고 요구하자. 무엇보다 ‘희망버스’를 타면서 품었던 정의로운 사회, 살기 좋은 세상을 향한 희망을 다시 노래하자. 희망은 좋은 것이다.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9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