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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판결로 동료의 유서를 대신 써주고 자살을 방조했다는 누명을 벗은 강기훈씨가 검찰과 법원은 지금이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그제 자신의 변호인단에게 보낸 e메일을 통해 대법원 판결 후 처음으로 소회를 밝힌 것이다. 강씨는 검찰과 법원의 과오로 억울한 누명을 쓴 채 24년간이나 고통과 치욕에 시달렸다. 두 기관은 이 요구를 받아들일 의무가 있다. 진실 호도로 인생이 망가진 사람과, 진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강씨는 e메일에서 “5월14일(대법원 판결일)로 저에 대한 사법적 판단은 끝났다. 이제 역사적 판단과 책임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며 “항소심에서 진술했듯 진정한 용기는 잘못을 고백하는 것”이라고 심경을 밝혔다. 당시 자신을 수사한 검사들과 검찰 조직은 자신이 유서를 쓰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진실을 왜곡했다고도 했다.

이 같은 주장은 근거가 확실하다. 강씨가 유서를 대신 썼다고 검찰이 주장한 고 김기설씨의 필적과 강씨의 필적이 다르다는 증거들이 여러차례 공개됐다. 검찰은 모두 조작된 것이라며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당시 수사 검사들은 대법원 판결 후 발뺌하거나, 궤변을 늘어놓으며 판결이 잘못됐다고 변명했다. 법을 떠나 인간적 측면에서도 용납하기 어렵다.

강씨가 2014년 2월 서울 서초동 서울고법에서 열린 재심 선고공판을 마친 뒤 밖으로 나서고 있다. _ 연합뉴스


그런가 하면 법원은 재판을 한없이 지연시켜 고의성 논란을 자초했다. 예컨대 2009년 서울고법에서 재심 개시 결정을 처음 내린 뒤 대법원이 최종 재심 개시를 결정한 것은 2012년 10월이었다. 3년 이상을 방치한 것이다. 그러고서도 다시 1년3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최종 선고를 내렸다. 강씨는 간암 투병 중이다. 이 때문에 법원이 그가 잘못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대법원 판결은 강씨의 혐의가 없다는 것이다. 누가 왜 무고한 사람에게 죄를 덮어씌웠는지는 전혀 밝혀지지 않았다. 유서대필 사건은 마무리됐지만 ‘유서대필 조작사건’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엄중한 책임자 문책이 뒤따라야 한다. 그에 앞서 검찰과 법원은 사건 날조에 대해 강씨에게 사과해야 한다. 강씨가 투병 중이므로 시간이 많지 않다. 두 기관은 땅에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기회를 놓치지 않기 바란다. 이는 또한 죽음을 부추기는 검은 세력으로 매도당한 민주화 세력과 유서조차 대필받는 꼭두각시란 오명을 뒤집어쓴 고 김기설씨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길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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