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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을 앞둔 스물다섯의 송인호씨는 밝은 미래를 꿈꾸는 대신 감옥에 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의 ‘죄목’은 무기를 들지 않겠다는 결심,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휘둘러서는 안된다는 확고한 종교적 신념을 가졌다는 것이다.

강제징집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대부분의 국가들에서였다면 송씨는 민간 차원에서 국가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국제법상 응당히 그렇게 해야 함에도 말이다

국제법상 문제시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감옥행은 이들이 받는 고통의 일부에 불과하다. 이들은 마치 1년6개월이라는 시간을 감옥에서 보내는 것이 충분하지 못한 형벌인 것처럼 삶 전반에 걸쳐 경제적인 불이익과 사회적 낙인, 차별을 감내해야 한다. 얼마나 좋은 학력을 보유했든, 또 얼마나 실력이 있든 간에, 전과기록은 병역거부자들의 취업을 광범위하게 차단하면서 이들을 영영 사회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 또한 같은 이유로 예비군복무를 거부할 경우 벌금 및 형사적 제재들을 통해 예비군훈련을 마칠 때까지 반복처벌을 받고 있다. 이들의 징역처벌이 불필요하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하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한반도의 특수한 안보상황을 여전히 이유로 들고 있다. 징병 대상에 포함되는 모든 인원을 징집해야 하기 때문에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인정이 어렵다고 설명한다. 이는 병역거부자들을 병역기피자와 혼동하면서 생긴 오류이다. 송씨와 같은 병역거부자들은 국가에 대한 병역의 의무를 기피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군사훈련을 원치 않는 것이다. 송씨는 “그 아무리 힘든 대체복무제라 할지라도 기꺼이 임할 각오가 되어 있다”고 국제앰네스티에 밝힌 바 있다. 즉, 군대가 힘들어 가기 싫어하는 것과는 철저히 구분되어야 한다.

2007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민간 형태의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는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할 것이라는 국방부의 발표에 국제사회는 일제히 환영의사를 표현했다. 하지만 1년도 채 되지 않아 2008년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서 ‘국민적 공감대 부족’을 근거로 이러한 계획은 철회됐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을 감옥에 가두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에 심각한 오점을 남긴다.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에서는 수차례에 걸쳐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은 인권의 초석인 사상, 양심, 종교의 자유의 한 부분으로서 반드시 포함되는 것이라고 명확하게 인지시키고 있다. 또한 유엔 인권이사회는 한국과 같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을 감옥에 가두고 대체복무제를 도입하지 않는 것에 대해 지속적으로 비판해왔다. 국제앰네스티는 그들을 양심수로 보고 있다.

국제앰네스티 회원들이 1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인권상황을 담은 보고서 '감옥이 되어버린 삶: 한국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발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출처 : 경향DB)


계속된 국제적인 비판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아무런 진전이 없던 이 문제가 지난 11일 주목할 만한 판결을 통해 작은 변화의 조짐을 보였다. 광주지방법원에서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들이 국가에 봉사할 의사가 없는 것이 아니며, 헌법으로 보호받는 양심의 자유에 근거해 집총을 거부한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는 올해 안에 헌법재판소의 중요한 결정이 내려지기를 기대한다. 결과에 관계없이 한국 정부에는 오직 한 가지 길만이 남아 있다. 그것은 지체 없이 국제적인 의무를 준수하는 것과 순수한 민간 차원의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는 것, 또한 불필요할 만큼 삶을 가혹하게 징계하는 모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을 석방하는 것이다.


니콜라스 베클란 | 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 사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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