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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다. 하늘의 봄볕은 이불속같이 따뜻하다. 초록바람이 쏴 하며 불어온다. 나뭇가지를 흔드는 바람소리가 귀를 맑게 한다. 5월은 가정의 달이자 유난히도 행사가 많은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입양의 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이 있다. 하지만 이 모든 날을 혼자서 보내야 하는 ‘나홀로 가정’이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나고 있다. 여기에 가정의 달은 가정이 소중하다는 의미만큼이나 역설적으로 오늘의 가정이 위기로 치닫고 있음을 방증한다. 가정은 삶의 보금자리요, 행복의 요람이다. 그러기에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가정에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가정을 바탕으로 부부간에 얻는 기쁨과 자녀나 구성원들 간에서 얻는 보람을 느낀다. 물론 밖에서 이루어지는 사회적 성취감으로 얻는 기쁨도 있지만 괴테는 “행복은 네 곁에 있다”며 행복이 가족과 가정에 있음을 강조했다.

생각해보면 5월은 잔인한 달이자 민주주의의 대의가 숨쉬는 달이다. 5·16과 5·18 등 두 개의 역사적 사건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광주의 5·18은 분단체제가 낳은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다. 분단을 빌미 삼아 군부독재가 저지른 학살만행은 아직도 국민의 가슴속에 자리하고 있다. 어찌 그들의 억울한 죽음을 잊겠는가. 만약 5·18 광주항쟁이 없었다면 1987년 6월항쟁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거리에서 최루탄을 맞아가며 독재 타도를 외치던 사람들, 시위대에게 박수를 보내고 손수건을 흔들고 음료수를 나눠주며 동참하던 사람들…. 그 모든 일은 광주에 대한 분노와 부끄러움이 있어 가능했던 것이다. 5월의 또 다른 역사적 사건은 5·16이다. 1961년 5월16일 새벽 3시, 제2군사령부 부사령관이던 소장 박정희, 중령 김종필을 비롯한 일단의 군인들이 장면 내각의 무능력과 사회의 혼란을 이유로 군병력을 동원해 제2공화국을 무너뜨리고 정권을 장악한 사건이다.

5.18 민주화운동 35주년 기념일을 하루 앞둔 17일 민주대행진에 5.18 유족과 세월호 유가족들이 나란히 광주 금남로를 걸어 전야제가 열린 옛 도청 앞으로 향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5·16은 쿠데타와 구국의 혁명 사이에서 아직도 방황하고 있다. 혁명과 쿠데타는 둘 다 비합법적으로 권력을 찬탈한다는 데 있다. 하지만 그 차이를 구분하는 일반적인 기준이 있다고 본다. 혁명은 피지배계층이 선거 등 합법적인 절차가 아닌 비합법 또는 초법적으로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쿠데타는 지배계급 내의 일부 세력이 무력 등 비합법적 수단으로 정권을 탈취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5·16이 혁명인지 쿠데타인지 논쟁의 핵심은 바로 그 행위의 정당성과 국민적 호응과 합의가 있느냐이다.

5·16 주체세력은 당시 장면 정권이 무능하고 비전이 없기 때문에 물러나게 해야 했고, 그 후 국가 발전을 성공적으로 도모했으므로 정당한 혁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혹자는 성공하면 혁명, 실패하면 쿠데타로 규정하고 있지만, 5·16은 무력으로 정권을 빼앗았기 때문에 쿠데타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5월이면 우리의 마음을 슬픔으로 내모는 게 또 있다. 경남 김해의 봉하마을 부엉이바위를 스치는 솔바람 소리다. 2009년 측근과 가족들이 금품을 수수했다는 포괄적 뇌물죄 혐의로 조사를 받았던 노 전 대통령은 그 해 5월23일 오전 자택 뒷산인 봉화산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내던졌다. 아! 생각만 해도 가슴 저미고 아찔하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 노 전 대통령이 가신 지 6년,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35년이 된 지금, 5월은 여전히 우리의 가슴에 쓰리고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살랑거리는 5월의 바람과 반짝이는 햇살, 신록의 물결이 눈부시다. 이 땅 민주화를 외치다 산화한 영령들을 위해 저 푸른 5월 하늘에 진혼곡이라도 울려야겠다.


신영규 | 한국신문학인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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