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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기밀을 무더기로 빼돌려 국내외 군수업체에 넘긴 전·현직 장교와 무기중개상이 재판에 회부됐다. 서울중앙지검은 차기 호위함·소형 무장헬기 등 방위력개선사업 관련 2·3급 군사기밀 31건을 빼내 방위산업체 25곳에 유출한 혐의로 해외 방산업체 이사 김모씨를 구속 기소했다. 김씨와 범행을 공모한 장교 출신 방산업체 간부 2명도 재판에 넘겼다. 현역 군인 수사를 맡은 군 검찰은 김씨에게 금품이나 향응을 받고 기밀을 넘긴 혐의로 박모 공군 중령과 조모 육군 소령을 구속 기소했다. 방산업체에 재취업한 예비역 장교들이 현역 장교와 짜고 기밀을 빼돌렸으니, ‘군피아(군대+마피아)’ 비리의 전형적 사례다.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군의 기강해이는 가히 충격적이다. 과거 기밀유출 사건의 경우 문서의 일부 내용이 메모 형태로 유출됐으나, 이번에는 장교가 비밀 문서를 그대로 복사해 넘기거나 휴대전화로 찍어 모바일 메신저로 보냈다고 한다. 목숨 걸고 국가를 지켜야 할 장교들이 돈 몇백만원이나 유흥주점 접대를 받고 고급 정보를 통째로 팔아넘겼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범행을 주도한 김씨는 10여년간 무기중개업을 해오는 과정에서 군 장교들과 지속적 친분을 쌓아온 것으로 조사됐다. 젊은 여성을 고용해 장교들의 식사·등산 모임에 동석시키는 등 미인계까지 동원했다고 한다. 김씨가 이런 일까지 할 수 있었던 걸 보면 군 기강이 어떤 수준인지 짐작할 만하다.

주요 군사기밀 유출자료 목록(2011) (출처 : 경향DB)


세월호 참사 이후 ‘관피아(관료+마피아)’ 비리 척결이 핵심 개혁과제로 부상했다. 군피아의 폐해는 관피아보다 더욱 심각하다. 퇴역 장교가 방산업체나 무기중개업체에 취업한 뒤 후배에게 돈을 주고 기밀을 빼내는 행위는 뇌물수수 차원을 넘어 국가안보까지 위협할 수 있다. 2011년 공군참모총장 출신 인사가 미국 군수업체에 기밀을 제공한 사실이 드러났을 때도 ‘전군(前軍)예우’ 관행을 근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보면 본질적으로 달라진 게 없음을 알 수 있다. 이제는 더 이상 군피아 비리 척결이란 과제를 미룰 수 없다. 예비역 장교의 방산업체 취업 규제를 보다 강화하고, 예비역과 현역의 질긴 유착 고리를 끊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군 내부감찰과 정신교육을 강화해 현역 장교가 무기중개상과 사적으로 접촉하는 일 따위는 상상도 못하도록 해야 한다. 군사기밀을 유출하는 것은 매국(賣國) 행위에 다름 아니다. 발본적 조치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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