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자녀를 이중언어 사용자로 키우고 싶어하는 부모들의 욕망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그 여파로 경쟁이나 하듯 수많은 영어교육 모형이 탄생하고 있는가 하면 조기 영어교육, 조기 유학, 영어학원, 영어캠프, 영어몰입사립학교 등이 우후죽순처럼 전국을 뒤덮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영어교육에 대한 열망은 지속적으로 영어교육의 시기를 낮추어 초등학교에서 유치원 단계로, 심지어 태아를 대상으로 하는 영어교육까지 확대되고 있다고 한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도대체 우리 사회에 영어교육의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는 형국이다. 특히, 조기에 영어교육을 시키고자 하는 부모들의 열망은 우리나라 유치원을 모두 영어유치원으로 만들어버릴 만큼 유치원이나 초등 저학년 단계의 영어교육은 이미 도를 넘어섰다.
문제는 조기 영어교육이 효과가 있는지, 도대체 뭘 얻기 위해서 이렇게 하는지, 영어교육에서 나이는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일찍 영어를 배우기 시작하는 것이 영어 능력 배양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정말 효과는 있는지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물론 어린 시기에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에 대한 논의는 영어교육 분야에서 매우 오래된 주제다. 특히 미국과 같이 이민자가 많은 나라에서 영어를 배우는 것과 나이의 관계를 연구한 수많은 논문들이 있다. 그리고 효과성이나 나이에 대한 논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4개 초등학교 6학년 4개반의 영어교육 설문조사 (출처 : 경향DB)
미국과 같은 영어 환경에서 나이와 영어의 관계에 주목하는 주된 이유는 이민자를 대상으로 무슨 이유 때문에 원어민처럼 영어를 잘하고 못하는지 원인을 찾는 데서 출발했다. 문제는 이런 연구들이 우리나라 영어 환경이나 맥락을 무시하고 분별없이 들어와서 많은 혼란을 야기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몇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첫째, 우리나라와 같은 영어 환경에서 나이와 영어 능력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찾기 어렵다. 다시 말해, 영어교육을 일찍 시작한다고 해서 나중에 그 아이의 영어 능력이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우리나라에서 영어를 조기에 배운다고 해서 그 아이가 원어민처럼 영어를 잘할 가능성은 0.0001%도 안 된다.
둘째, 우리나라 환경에서 영어 능력은 나이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수많은 요인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점이다. 개인의 관심, 능력, 노력, 집중도, 언어 환경 등 수많은 개인적, 사회적, 양적, 질적 요인이 성인이 되었을 때의 영어 능력을 결정한다는 얘기다.
셋째, 어린 시절 외국어인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투자할 경우 아이의 모국어는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점이다. 어린 시기에 외국어인 영어에 대한 집중적인 노출은 우리말 노출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아이와의 정상적인 교류와 깊이 있고 풍부한 우리말 노출을 제한하기 마련이다. 그런 격차가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 눈에 띄게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우리 사회에서 우리말이 뒤로 밀리고 영어가 전면에 나타나는 상황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조건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우리말은 언제나 우리 내부적으로 주도적인 언어가 될 것이며, 영어는 부수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런 언어를 위해서 앞뒤를 바꾸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물론 그 시기의 아이들에게 영어에 투자한다고 해서 들인 시간만큼의 효과를 얻기도 어렵다.
그 시기의 아이들은 가정과 삶의 주변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통해서 세상과 교류하고 공감하면서 세상을 알아가야 한다. 그 시기의 아이들은 그렇게 성장하도록 되어 있고, 그렇게 조금씩 한국인이 되어가는 것이다. 인위적이고 검증되지 않은 사이비 조기 영어교육으로 그 과정을 바꿀 수는 없다. 아무리 일찍 시작하는 영어교육일지라도.
이병민 | 서울대 영어교육과 교수
'일반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설]국가안보 위협하는 ‘군피아’ 비리 뿌리뽑아야 (0) | 2014.07.15 |
---|---|
[사설]민심 역행하는 ‘거짓말 장관’ 임명 안된다 (0) | 2014.07.15 |
[정동칼럼]힘내라, 사회복지사 (0) | 2014.07.15 |
[세상읽기]‘기업살인법’과 세월호 (0) | 2014.07.14 |
[기고]증오의 꽃 ‘한공주’ (0) | 2014.07.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