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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취소 처분을 받았던 서울지역 자율형사립고(자사고) 8곳이 당분간 자사고 지위를 유지하게 됐다. 서울행정법원이 지난달 30일 학교 측이 낸 자사고 지정취소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면서다. 앞서 경기 안산동산고와 부산 해운대고의 집행정지 신청도 인용돼 올해 재지정 심사에서 탈락한 자사고 10곳은 내년 입시에서 그대로 학생을 선발하게 됐다. 서울시교육청은 “법률적·행정적 문제가 없는 만큼 본안소송에서는 지정취소가 받아들여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경기와 부산교육청은 가처분소송 인용에 대해 항고 뜻까지 밝히고 있다. 장기간 법정 공방이 예상되며 현장의 혼란은 불가피해졌다. 

서울시 용산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사무실에서 7월29일 열린 자사고 재지정 평가 토론회에 참석한 패널들이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김정근 기자

자사고 폐지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 교육공약으로 100대 국정과제에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당장에라도 정리될 듯하던 자사고 정책이 집권 3년차가 되도록 한 치 앞을 예상 못하는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은 정부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크다. 교육부는 두 가지 카드를 날렸다. 우선, 의지가 있었다면 자사고를 일괄 폐지하도록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을 바꿔 놓을 수 있었다. 자사고 자체가 2009년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으로 5년간의 한시적 학교로 만들어진 만큼, 일괄폐지 또한 충분히 가능한 방법이었다. 자사고 지정취소의 최종 결정권을 교육감에게 넘겨 단계를 줄이는 방안도 가능했다. 박근혜 정부가 낙제점을 받은 자사고를 구제하며 끼워 넣은 시행령이다. 그러나 교육감들의 이 같은 요구에 교육부는 내년 하반기 자사고 문제를 포함한 고교체제 개편방안을 함께 검토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이제껏 뭘 하다가 집권 4년차에야 ‘시행’도 아닌 ‘검토’를 하겠다는 말인가.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3월22일 대선 교육정책 발표문에서 “부모의 지갑 두께가 자녀의 학벌과 직업을 결정할 수 없다”며 “입시명문고가 되어버린 외국어고, 자사고, 국제고를 일반고로 단계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2017년 문재인·유승민·심상정 후보가 모두 자사고와 외고 폐지를 공약했다. ‘귀족학교’를 없애달라는 여론이 그만큼 강력했다. 고교서열화를 완전히 해소하겠다는 초심은 어디로 갔는지, 현 정부의 교육 정책은 누구를 바라보고 있는지 묻고 싶다. 문 대통령은 1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딸의 교육 관련 의혹에 대해 “논란 차원을 넘어서 대입 제도 전반을 재검토해 달라”고 말했다. 연관되어 길 잃은 자사고 정책도 다시 살펴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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