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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습격한 김기종씨(구속 중)를 재판에 넘겼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김씨를 기소하며 살인미수, 외교사절폭행,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했다. 경찰이 적용을 공언했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는 공소장에서 빠졌다. 검찰은 ‘배후세력’도 찾지 못한 채 김씨 단독범행으로 결론 냈다. 대통령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뒤 검경 수사인력 100여명이 한 달 가까이 매달린 결과다. 검경은 망신살 제대로 뻗치게 됐다.

검찰은 김씨가 북한 간행물을 갖고 있었고 북한 주장을 추종하는 등의 행동을 했지만 보강수사가 필요하다며 보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국가보안법을 신중하고 엄격하게 적용해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었다”고 말했다. 검찰 간부 입에서 보안법을 두고 이런 발언이 나오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배후세력 여부와 관련해서도 검찰은 “1년간의 후원금과 통화내역 등을 살폈지만 배후나 단체와의 연계 근거를 찾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어제 수사결과 발표를 끝으로 특별수사팀은 사실상 해체됐다. 현행범 한 명 재판에 넘기자고 이토록 난리법석을 피웠다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마크 리퍼트 미국 대사를 공격한 혐의로 체포된 김기종씨(55)가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6일 서울 종로경찰서를 빠져나와 법원으로 향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기실 웃지 못할 소극(笑劇)은 예고된 것이었다. 리퍼트 대사 피습사건이 발생하자마자 박근혜 대통령은 “단독으로 했는지 배후가 있는지 철저히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배후세력의 존재에 무게를 두며 반드시 찾아내라고 엄명을 내린 셈이다. 정부와 청와대 비서실, 새누리당 우두머리들은 한자리에 모여 이번 사건을 ‘종북세력’ 소행으로 규정하고 배후를 파헤칠 것이라고 다짐했다. 검경이 허겁지겁 ‘윗분’들의 뜻을 받들어 대규모 수사팀을 꾸린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어마어마한 배후가 생겨나거나 경천동지할 종북 행각이 드러날 리 있겠는가. 정치적 국면전환용 꼼수는 결국 ‘단체 헛발질’로 끝나고 말았다.

이번 사건 수사 과정을 살피면 살필수록 부끄럽고 참담해진다. 대통령이 개별 사건에 ‘수사 지휘’를 하고, 피의사실조차 확정되지 않았는데 수사기관이 적용 법조(法條)부터 거론하는 게 법치국가에서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나마 검경이 1970~1980년대풍의 ‘용공조작’을 흉내내지 않은 것만도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집권세력은 더 이상 반이성적 공안몰이로 나라를 분열과 혼란으로 몰아넣어선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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