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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권익위원회가 11일 전원위원회를 열어 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시행령 개정안을 심의·의결했다. 공직자 등이 받을 수 있는 선물 상한액을 농축수산품과 농축수산물 함량이 50%가 넘는 가공품에 한해 10만원으로 올리고, 경조사비 상한액은 5만원으로 내리는 게 개정안의 골자다. 이로써 식사·선물·경조사비 상한액은 ‘3만·5만·10만원’에서 ‘3만·10만(농축수산물)·5만원’으로 조정됐다. 결혼축의금·조의금 등 경조사비 상한액을 절반으로 내린 것은 시민 부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법 시행 이후 10만원이 표준 경조사비로 굳어졌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시민들의 경조사비 부담이 오히려 커졌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5만원으로 내린 것은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법 시행 이후 매출이 최고 30% 넘게 떨어졌다는 농축수산인들의 거센 반발을 이유로 농축수산물에 한해 선물비 상한액을 올린 것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

김영란법은 한국 사회를 크게 바꿔 놨다. 관행처럼 행해지던 부정한 청탁과 과도한 접대에 제동이 걸리면서 청렴문화를 확산시켰다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여러 여론조사에서도 시민 80~90%가 김영란법에 찬성했다. 그런데도 정부가 법 시행 1년3개월 만에 서둘러 시행령을 개정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시행령 45조에는 가액범위 조정과 관련해 ‘2018년 12월31일까지 타당성을 검토하여 개선 등의 조치를 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시민들의 공감대를 넓히면서 시행령을 개정할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법 제정을 주도했던 김영란 전 권익위원장도 “법의 본질을 악화시키는 가액 조정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지난달 27일 권익위 전원위원회에서 부결된 개정안을 일부 자구만 수정해 2주 만에 가결시킨 것은 내년 지방선거 때 농어촌 지역의 표를 얻기 위한 것이라는 의심을 살 만하다.

현실과 괴리가 크거나 특정 업종이 피해를 입을 수 있는 법 조항은 고치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법은 예외를 인정해 손대기 시작하면 금세 누더기가 되기 십상이다. 농축수산인처럼 음식업계가 매출 급감을 이유로 식사비 상한액을 높일 것을 요구할 수도 있다. 정부가 시행령 개정을 서두른 것은 부적절했을 뿐 아니라 형평성 논란에 휘말릴 소지가 다분하다. 정부는 법 따로, 현실 따로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 못지않게 법 정신 준수도 중요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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