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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경찰이 어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의 암살 사건 배후에 북한이 있음을 강하게 시사했다. 누르 라시드 이브라힘 말레이 경찰부청장은 사건 발생 후 처음 연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연루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범행 후 출국한 4명의 용의자들이 모두 북한 국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용의자들이 북한 정보국 소속인지 여부, 용의자들의 행방은 밝힐 수 없다”고 했지만 검거한 리정철과 출국한 4명 외에 다른 북한 국적자도 추적 중이라고 밝혔다. 이번 암살이 북한의 소행임을 사실상 확인한 것이다. 통일부도 “김정남 피살 사건 배후에 북한 정권이 있다고 본다”며 “무모하고 잔학한 암살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논평했다.

이번 암살은 당초 베트남·인도네시아인 등이 연루된 청부살인이어서 자칫 미궁에 빠질 수 있다는 관측이 있었다. 그러나 북한과 가까운 말레이시아 당국조차 덮을 수 없을 만큼 북한의 개입이 충분히 드러났다. 그런데도 강철 주말레이시아 북한대사는 말레이 당국에 대해 시신 인도를 요구하며 부검에 반대하는 등 진실 규명을 방해했다. 뜻이 관철되지 않자 한국 등 적대세력과 결탁했다며 말레이 당국의 부검 결과를 믿을 수 없다는 억지까지 썼다.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보여야 할 최소한의 합리성마저 저버림으로써 북한의 궁박한 처지만 확인한 꼴이다.

김정남 피살 사건의 용의자로 체포된 북한 국적의 리정철이 18일 오후 조사를 받기 위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세팡경찰서로 연행되고 있다. 리정철은 17일 밤 쿠알라룸푸르 남쪽 잘란쿠차이라마의 한 아파트에서 체포됐다. 쿠알라룸푸르 _ 연합뉴스

북한은 그동안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명분 아래 핵개발 등 모험적 행동과 대남 군사도발을 감행해왔다. 인권 무시와 독재정권에 대한 비판도 부정해왔다. 그러나 이번 김정남 암살로 이런 명분과 주장이 모두 허구임이 드러났다. 대낮에 공공장소에서 독극물로 최고 지도자의 혈육을 살해하는 무도한 깡패국가임을 자인했다. 이슬람극단주의자들을 제외하고 이 같은 테러를 저지르는 국가는 지구상에 없다. 당장 미국을 중심으로 북한을 테러국으로 재지정하자는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제 진실이 드러난 만큼 북한은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중국 상무부는 그제 유엔 대북 제재 결의의 이행을 위해 연말까지 북한산 석탄 수입을 전면 중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친중파인 김정남 살해에 대한 대응 조치로, 우방인 중국의 인내심마저 고갈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대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3대 세습과 지속적인 숙청, 공포정치는 정상 국가의 모습과 거리가 멀다. 이번 암살은 역설적으로 김정은이 권력을 유지하는 데 더 많은 도전에 직면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북한은 김정남 암살을 시인·사과하고 합당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국제사회가 북한의 대응을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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