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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칼럼

[여적]역선택

opinionX 2017. 2. 20. 10:40

미국인들은 중고차시장을 ‘레몬 마켓’으로 지칭한다. 시큼하고 맛없는 과일인 레몬만 널려 있는 레몬 마켓처럼 중고차시장에선 값싸고 품질이 떨어지는 자동차만 유통된다는 것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 애컬로프 미국 UC버클리대 교수는 ‘레몬을 위한 시장’이란 논문에서 “중고차시장이 레몬 마켓이 되는 것은 판매자에 비해 제품에 대한 정보가 적은 구매자들의 역선택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중고차시장의 역선택 논리는 이렇다.

구매자들은 중고차시장의 평균가격에 근거해 구매의사를 표시한다. 개별 중고차에 대한 정보가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판매자는 자신의 차량에 대한 정보를 많이 갖고 있다. 구매자와 판매자 간 정보의 비대칭이 나타나는 것이다. 성능이 좋은 차량 소유자들은 평균가격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중고차시장에 내놓지 않는다. 반면 성능이 떨어지는 차량 소유자들은 평균가격이라도 받고 팔려고 한다. 이에 따라 구매자들은 값은 싸지만 성능이 떨어지는 중고차를 살 수밖에 없는 역선택의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왼쪽)가 19일 서울 성동구 이마트 성수점에서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의 오디오북 녹음 리허설에 앞서 참석자들과 이야기하며 웃고 있다. 연합뉴스

역선택은 뷔페식당에서도 발생한다. 뷔페식당의 주인은 음식을 적게 먹는 손님을 선호한다. 하지만 손님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은 뷔페식당 주인은 적자가 예상되면 식당 이용료를 올리거나 음식 가짓수를 줄이는 역선택을 한다.

완전국민경선제를 채택한 더불어민주당에서 역선택 논란이 불거졌다. 지난 15일 박근혜 대통령 지지모임인 ‘박사모’가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민주당 경선에 모두가 참여하십시다. 문재인이 후보가 되는 것은 무조건 막아야 합니다”라는 글이 발단이 됐다. 민주당은 “유력 대선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를 경선 단계에서 떨어뜨리기 위해 반대 진영이 벌이는 방해공작”이라며 발끈했다. 반면 중도·보수층 선거인단 참여를 독려 중인 안희정 충남지사 측은 “역선택을 따질 거였으면 완전국민경선제를 하지 말았어야 한다”며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시장에서 소비자의 역선택은 실패를 낳는다. 선거에서의 역선택도 마찬가지다. 특정 후보를 떨어뜨리려 다른 당의 경선에 참여해 경쟁 후보를 미는 정치공작적 행위는 선거도 망치고, 민주주의도 훼손하기 때문이다.

박구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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