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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접대 의혹’과 ‘장자연 사건’의 전면 재수사를 요구하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새로운 의혹과 부실수사 정황이 잇따라 드러나면서다. 두 사건은 모두 성착취와 인권유린이라는, 한국 사회의 윤리적 파탄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오랜 시간 진실이 은폐되며 피해자와 목격자들의 고통은 커지고, 여성을 성적 도구로 여기는 폭력은 반복돼왔다. 최근 벌어진 승리·정준영 사건도 여성을 대상화하는 폭력과 착취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제는 거대한 부조리의 사슬을 끊어낼 때다.

김학의·장자연 사건은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와 그 실무기구인 대검찰청 과거사 진상조사단의 조사 대상에 올라 있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최근 김학의 사건과 관련해 검찰의 부실수사를 뒷받침하는 발언을 했다. 그는 국회에서 “(2013년 수사 당시) 명확한 영상을 입수했는데, (김 전 차관 얼굴을) 육안으로도 식별할 수 있어 감정 의뢰 없이 검찰에 송치했다”고 말했다. 2013년 수사 당시 경찰은 기소의견으로 사건을 넘겼으나 검찰은 동영상 속 인물이 김 전 차관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며 무혐의 처분한 바 있다. 민 청장의 발언이 있던 날, 동영상 속 피해 여성도 KBS에 출연해 사건 당시 정황과 검찰 조사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고 장자연 문건' 목격자로 알려진 배우 윤지오씨와 한국여성의전화 등 단체 회원들이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고 장자연씨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김정근 선임기자

장자연씨가 사망 직전 작성한 ‘장자연 리스트’의 목격자 윤지오씨는 10년간 해외에 체류해오다 최근 귀국해 공개증언에 나서고 있다. 윤씨는 대검 진상조사단에 출석해 리스트와 관련된 언론인 3명과 정치인 1명의 이름을 진술했다. 그는 “이 사건은 단순 자살이 아니다”라며 공소시효 연장을 촉구하고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의 장자연 사건 재수사 국민청원도 60만명이 참여할 만큼 열기가 뜨겁다.

문제는 대검 진상조사단의 진상규명 작업이 지지부진하다는 데 있다. 김 전 차관은 진상조사단의 소환 요구에 불응했다. 강제구인 권한이 없다는 허점을 노린 것이다. 진상조사단은 또 이달 말로 끝나는 조사기한을 연장해달라고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에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 새로운 의혹이 줄줄이 불거지는데 연장을 거부하는 까닭을 납득하기 어렵다. 검찰의 치부를 덮고 제 식구를 감싸려는 의도인가. 검찰권 오남용 의혹을 받는 대표적 사건들을 이대로 묻고 간다면, 검찰의 신뢰는 회복불능 상태에 빠질 것임을 알아야 한다. 가해자들은 거리를 활보하는데, 피해자들은 죽음을 택하거나 위협에 시달리는 상황을 더 이상은 방치할 수 없다. 진상조사단 활동기한을 연장하고, 이후 전면 재수사를 통해 권력형 성폭력의 은폐된 진실을 온전히 드러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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