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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옷을 정리하려고 옷장 문을 열었다. 이거, 옷이 너무 많잖아. 매일 옷을 꺼내 입고 벗어두는 옷장이건만, 켜켜이 쌓이고 걸린 옷들을 보고 새삼 놀랐다. 버리고 정리하기를 잘한다고 자부하는 데다가 새 물건 사기를 최소한으로 한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정리를 잘 못하는 아내는 나를 보고 가끔 ‘무자비하다’고 표현하지만, 쌓인 옷들을 보니 나는 무자비한 게 아니고 무심한 쪽이었다. 옷들의 기억을 더듬어보니 그중에는 10년을 넘어 20년이 더 된 옷들도 꽤 섞여 있었다. 

언젠가는 아내가 버리려고 내놓은 옷들 중에 아주 오래된 여름 티셔츠를 발견하고 한참을 망설인 적이 있다. 너무 빨아서 천이 얇아지고 색이 빠진 데다 군데군데 터진 부분이 여러 곳인 티셔츠를 손에 들고는, 내 영혼의 일부가 버려지는 듯한 기분을 지그시 억눌렀다.

정리와 버리기를 잘한다고 했지만, 분명한 이유가 있을 때만 물건을 버리는 편이다. 나는 아직 원시적인 물활론자라서 세상에 생겨난 물건들에는 다 나름의 존재 의미가 있다고 믿는 편이다. 그리하여 아직 존재의 의미를 다하지 못한 것들을 서둘러 떠나보내서는 안된다고 믿는다. 충분히 수명을 다하지 않은 물건들을 나는 지금 이렇게 거창하게 표현하는 중이다.

회사에서 고장 난 PC를 놓고 젊은 직원과 언쟁을 벌인 적이 있다. 심장부에 해당하는 메인보드가 나갔고, 너무 오래된 기종이라 같은 부품을 구하기도 어려웠다. 열심히 찾으면 구할 수는 있겠지만 가격이 새 PC를 사는 것과 맞먹었다. 직원은 통째로 버리자는 쪽이었고, 나는 살릴 수 있는 부품들―메모리, 하드디스크, 파워유닛 따위를 떼어내 어떻게든 써보자는 쪽이었다. 최신 부품에 비해 속도와 용량이 형편없이 떨어지고, 이 부품에 맞추려면 사양화된 또 다른 부품을 사야 하는 등 이치에 안 맞는 주장이었다. 별 수 없이 주장을 접었지만 왠지 직원이 야속하여 ‘냉정한 친구 같으니!’ 하고 중얼거렸다.

디자인과 성능이 뛰어나고 가격까지 싼 물건들이 끊임없이 시장에 나와 우리의 욕망을 호시탐탐 노린다. 동네 선배와 다이소 매장에 함께 들어가면서 “마음 단단히 먹자”고 서로에게 말하며 웃었다. 이렇게 싼 물건들이 늘 손에 닿는 곳에 있으니, 세상 돌아가는 모양을 아무리 비관해도 세상은 여전히 발전하고 있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그 발전된 물건과 기술들을 가지고 무엇을 어떻게 더 낫게 해내고 있을까? 작고한 미국 작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러스는 말했다. “이 혼잡하고 뜨끈뜨끈한 소비지옥에서 우리는 또 다른 소비를 좇는다. 소비의 갈증과 권태를 달래기 위해서.”

미국에서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는 ‘곤마리 정리법’의 주인공 곤도 마리에가 떠오른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라는 단순한 원칙을 가르치는 그의 정리법은 일본식 미니멀리즘을 넘어 미국 소비자들에게 거의 자아실현 방법론으로까지 받아들여진단다. 그 물건이 여전히 당신을 설레게 하는가? 더 이상 설렘을 주지 않는 물건은 진심 어린 감사 표시와 함께 작별을 고하라. 안 입는 스웨터를 안고 ‘그동안 고마웠다’고 말하고 이별하라. 어랏, 그러고 보니 이것은 내가 믿는 원시적인 애니미즘과도 같은 것일까?

곤도 마리에는 끝없는 소비의 ‘뜨끈뜨끈한 혼돈과 권태’에 시달리는 미국 소비자들에게 한 줄기 소낙비 같았으리라. 소비를 하면 할수록 심해지는 갈증의 치유법을, 사는 것이 아닌 버리는 것에서 찾은 그의 방법은 윤리적인 만족감까지 주었을 것이다. 곤도 마리에가 수수하지만 세련된 미모의 젊은 동양인 여성이라는 것은 논외로 치자.

하지만 비밀은 거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곤도 마리에처럼 아름답게 반짝이는 수수한 삶. 나의 후덥지근한 소비주의적 행태를 뭔가 새로움으로 바꿀 수 있으리라는 희망. 그들은 새롭고 반짝이는 물건들을 치운 자리에 또 하나의 새롭고 반짝이는 청결과 시원한 공기와 욕망을 구입해 걸어놓는다.

우리가 잡동사니 물건들과 옷가지들의 늪에 빠진 것은 애초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던 ‘필요’에 세뇌된 탓인지 모른다. 당신에게 꼭 필요하다고 누군가 넌지시 속인 그 물건들 말이다. 그 필요는 곤도 마리에가 보여주는 새로운 삶의 필요로 대치된다. 해마다 전셋집을 옮기는 이들과, 원룸에 꼭 필요한 것들만 갖출 수밖에 없는 이들과, 매주 아파트 분리수거를 돕는 경비원 아저씨들에게, 새롭고 반짝이는 삶을 위해 물건을 내다버리는 이들은 얼마나 멀리 있는 것일까?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을 말하지만, 너무 소소해서 비루할 수밖에 없는 불행은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소비지옥의 진짜 풍경이다.

<안희곤 사월의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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