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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어제 유일호 부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야당과 시민이 반대하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안을 의결했다. 협정안은 박근혜 대통령의 재가를 거쳐 오늘 한·일 양국의 서명으로 체결·발효된다. 중대 안보 사안을 지난달 27일 국방부의 협상 재개 발표 이후 한 달도 안되는 기간에 군사작전하듯 처리했다. 이런 협정안 의결은 사실상 무효다. 무엇보다 범죄 피의자로 국정 책임자로서의 정당성을 상실한 식물대통령과 문민통제를 거부하는 군부의 결정에 대한 권위를 인정할 수 없다. 대통령도 총리도 아닌 부총리가 주재하는 국무회의의 효력 자체가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단 한번의 공청회도 열지 않고 협정을 강행한 정부의 결정을 신뢰해야 할 이유도 없다. 대통령이 이 협정을 단지 외국에 자신의 건재를 과시하는 수단으로 삼은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사실이라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시민단체 회원들이 22일 오전 국무회의가 열리는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의결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국방부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한·일 간 직접적인 정보 공유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일본의 정보는 기존의 한·미·일 군사정보공유약정을 통해서도 얻을 수 있다. 그보다는 이 협정이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 일본의 아베 정권은 ‘전쟁할 수 있는 일본’을 추구하고 있다. 일본이 북핵 위협을 이유로 자위대의 북한 지역 접근을 시도할 경우 이를 막을 수 있는 제어수단이 마땅치 않다. 이에 대한 면밀한 고려 없이 덜컥 협정부터 맺은 것은 위험한 선택이다. 북핵 대비용이라고 하지만 영토 관련 사안을 이토록 허술하게 처리할 수는 없다.

중국이 협정을 미국 주도의 미사일방어체제 편입으로 보고 있는 것도 심상치 않다. 최근 중국의 한류 규제 강화도 보복성 조치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의 새 행정부 출범 후의 안보 지형을 감안하지 않고 협정을 체결한 것도 성급해 보인다. 협정 체결로 인한 동북아 정세의 변동성을 절대로 가볍게 봐서는 안된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같은 갈등적 사안은 통치권 붕괴 상황에서 강행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오히려 중단했던 협상 재개를 선언하고 기습작전하듯 처리했다. 시민 반대를 묵살한 채 밀어붙인 협정은 향후 안보의 중대 위협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시민들은 협정을 주도하고 동조한 모든 책임자들을 똑똑히 기억하고 책임을 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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