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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국무회의는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재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검찰의 ‘피의자 대통령’ 수사 발표 이후 여론을 의식해 불참했다고 한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대신해 페루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 중이다. 그러다보니 교체 통보를 받은 유 부총리가 부총리직을 계속 수행하는 것도 모자라 국무회의까지 주재하는 비정상적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국무회의에서 장관들은 국가 최대 현안이라 할 수 있는 최순실 국정농단에 대해선 꿀 먹은 벙어리처럼 한마디 언급도 없었다고 한다. 보다 못한 박원순 서울시장이 “국민과 대통령 중 누구 편에 설지 결단하고, 황 총리를 포함해 국무위원들은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고 요구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지금 내각 꼴이 이렇다. 총리부터 짐 보따리를 쌌다가 다시 풀었고, 김병준 총리 지명자는 잊혀진 이름으로 전락했다. 경제는 두 명의 부총리가 어정쩡한 동거를 하고 있다. 박승주 국민안전처 장관 내정자는 자진사퇴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최순실 개입 정황이 속속 확인되면서 쑥대밭이 됐다. 강은희 여성가족부 장관은 최순실 딸 정유라 문제가 불거졌을 때 “이 선수 관련 얘기는 허위사실”이라고 비호한 사실이 드러나 ‘보은 인사’가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에서 두번째)이 2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장관들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으니 공직 사회 전체가 너나없이 손을 놓고 무력감에 빠져 있다. 사실상 ‘식물정부’ 상태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 동력은 소멸된 것이나 다름없다. 경제위기 상황 속에 당장 내년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400조원 규모의 예산안 처리, 세법 개정안 등이 올스톱됐다. 컨트롤타워의 부재로 내년도 경제정책 기조조차 정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어느 때보다 한반도 정세의 불확실성이 높아졌지만 외교안보 현안의 추동력도 꺼진 상태다.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지금 누가 무슨 일을 하겠느냐”는 분위기가 팽배하다고 한다. 필요한 공문마저 제때 내려가지 못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박 대통령의 지도력은 물론 정부 신뢰가 추락한 상태에서 국정 추진력 회복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청와대는 업무수행 기능이 마비됐고 부처 간 정책조율도 난항을 겪고 있다. 온 나라가 ‘최순실 블랙홀’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데 박 대통령은 장기전 태세다. 지금 같은 국정 마비 상태를 계속 끌고 갈 작정이라면 끔찍하다. 툭하면 ‘애국심 타령’이었던 그가 일말의 책임이라도 느낀다면 망가지고 있는 나라 걱정부터 해야 마땅하다. 도대체 언제까지 국정이 표류하게 내버려 둘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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