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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일 검찰총장이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오른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에 반발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해외 순방 중인 문 총장은 지난 1일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법률안들은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리에 반한다”며 “특정한 기관에 통제받지 않는 1차 수사권과 국가정보권이 결합된 독점적 권능을 부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정한 기관’은 경찰을 가리킨 것으로 해석된다. 이례적 입장 표명은 경찰권 비대화를 우려하는 검찰 구성원 의사를 대변하려 한 취지로 짐작한다. 그러나 임기를 겨우 두 달여 남겨놓은 검찰총장이 국회의 고유 권능인 입법권 행사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은 온당한 처사로 보기 어렵다.

무엇보다 수사권 조정 논의가 어디서 비롯했는지부터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국 검찰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막강한 권한을 보유하고 있다. 직접수사·수사지휘·영장청구·기소권이 그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권한을 주권자가 아닌 당대 권력을 위해 휘둘러왔다는 데 있다. 검찰권 분산이 기본권 확장과 민주주의 심화를 위해 핵심적 과제로 부상한 이유다. 수사권 조정은 임은정 부장검사가 지적했듯이 “검찰에 막중한 권한을 위임했던 국민들이 검찰에 준 권한 일부를 회수해가려는” 작업이다. 검찰은 세부적 문제를 들어 반발하기에 앞서 스스로의 행태를 성찰하고 주권자에게 사과했어야 마땅하다. 문 총장의 입장문에는 한마디 자성도 사과도 없었다. 검찰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는 증좌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 5월 3일 (출처:경향신문DB)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안은 이제 구체적 논의단계에 접어들었을 뿐이다. 최장 330일간 각계 의견을 반영하고 면밀히 가다듬어 최종안을 만드는 과정이 남아 있다.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선 정보경찰에 대한 통제 강화, 경찰위원회 운영 실질화 등을 통해 ‘경찰국가화’ 우려를 불식할 필요가 있다. 공수처 역시 여야 4당 합의 과정에서 기소 대상이 판검사와 경무관급 이상 경찰로 축소됐는데, 이를 다시 확대해 ‘무늬만 공수처’가 되는 일을 막아야 한다. 국회 논의의 초점은, 시민에게 보다 양질의 형사사법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이 무엇인지에 맞춰져야 한다.

문 총장은 해외 순방 일정을 단축해 조기 귀국할 예정이라고 한다. 섣부른 추가 행동은 자제하기 바란다. 권력기관 개혁은 각 기관의 ‘밥그릇 크기’를 새로 정리하는 일이 아니다. 검찰이든, 경찰이든 개혁 당사자들은 신중하고 겸허한 자세로 논의에 임해야 옳다. 주권자를 두려워할 줄 모르고 오만하게 굴었다가는 조직이 더 큰 위기를 맞게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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