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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청와대에서 주요 기업인과 간담회를 가졌다. 27~28일 일정의 간담회 첫날 행사에는 현대차·LG·포스코·한화·신세계·두산·CJ·오뚜기 등 기업인 8명이 참석했다. 사전 시나리오 없이 발표 자료, 발언 순서, 시간제한을 두지 않았으며 맥주를 곁들여 노타이 차림으로 대화를 나눴다. 문 대통령은 20여분간의 ‘호프 미팅’이 끝난 뒤 자리를 옮겨 2시간10여분 동안 다양한 경제현안을 두고 기업인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문 대통령은 새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과 일자리 창출, 소득주도 성장,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등을 설명하며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기업인들은 “중국의 사드 보복에 따른 피해 등 어려움을 있는 그대로 전달했다”고 했다. 그동안 대통령 초청 기업인 간담회는 ‘한쪽은 말하고 한쪽은 받아쓰는’ 일방통행식 행사로, 권력과 대기업의 ‘결탁과 유착’ 수단으로 변질돼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청와대 상춘재 앞 녹지원에서 소상공인이 만든 수제맥주로 기업들인과 건배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임종석 비서실장, 박정원 두산 회장, 금춘수 한화 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문 대통령, 구본준 LG 부회장, 손경식 CJ 회장, 권오준 포스코 회장, 함영준 오뚜기 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청와대사진기자단

청와대와 대기업 간의 유착은 누대에 걸친 적폐라 아니할 수 없다. 권력은 기업에 특혜를 주고 기업은 정권에 헌금 등으로 보답하는 ‘비리의 공생관계’가 이어져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태는 이런 비리의 통로가 대통령 초청 간담회였다는 점을 보여줬다. 대통령이 주요 기업인을 청와대로 초청해 간담회를 여는 관행을 박 전 대통령은 비리의 창구로 악용한 것이다. 이전 정권들도 방식만 달랐을 뿐 이 같은 비난에서 자유롭지 않다. 청와대와 기업인이 만나 국가 경제 발전 방향을 논의하는 게 아니라 대통령은 기업의 민원을 해결해주거나 특혜를 보장하고, 기업인들로부터 반대급부를 약속받았던 것이다. 대기업의 미르·K스포츠 재단 기부, 삼성그룹의 승계 문제, 면세점 허가 등은 박 전 대통령과 기업인 간의 간담회나 독대를 통해 추진되거나 해결됐다. 어제 간담회에서 문 대통령이 기업과 단독으로 만나는 자리를 마련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검은 거래’를 하지 않겠다는 뜻을 공표한 것이기도 하다.

기업은 국가 경제를 이끌어가는 세 가지 기둥 가운데 하나다. 특히 한국에서 대기업은 나라의 일자리와 성장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한국을 대기업 중심에서 중소기업 중심 국가로 전환하겠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대기업의 역할을 외면할 수는 없다. 문 대통령은 강압적으로 기업인들에게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이 이틀에 걸쳐 간담회를 열기로 한 것은 일방통행식의 만남이 아니라 기업인들의 의견을 더 많이 듣고 소통하겠다는 뜻이다. 어제 청와대 간담회가 권력과 기업인이 정경유착의 굴레를 벗고 국가 발전의 정의로운 동반자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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