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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지난 7일 청와대 오찬 회동에서,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행 사건을 두고 “임종석(대통령비서실장)이 (폭로를) 기획했다는 얘기가 있던데”라며 음모론을 제기했다. ‘세계여성의날’인 8일에는 한국당 성폭력근절대책특위 위원장인 박순자 의원이 당내 성폭력 문제와 관련해 “보수진영인 한국당은 성도덕에서 보수적”이라며 “우리에게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들은 거의 ‘터치’(접촉)나 술자리 합석에서 있었던 일들이지, 성폭력으로 가는 일은 없었다”고 말했다.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 운동의 본질을 훼손하고, 저열한 젠더감수성을 부끄러운 줄 모르고 드러내는 한국당의 행태에 어처구니가 없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3월8일 (출처:경향신문DB)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8일 홍 대표 발언에 대해 “피해자가 정치공작의 도구였다는 말이냐. 전형적인 2차 가해”라고 비판했다. “농담한 것”이란 홍 대표 해명을 두고도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농담으로 하느냐”고 질타했다. 이 대표가 옳다. 용기 내 고발한 피해자를 돕지는 못할망정 공당 대표가 미투를 ‘기획’이라거니 ‘농담’의 소재로 삼는 것은 피해자를 모욕하는 행태이다. 성폭력 근절 대책을 책임지겠다는 특위 위원장의 ‘터치’ 발언도 수준 이하이기는 매한가지다. 성폭행까지 이르지 않은 성폭력은 범죄 축에도 못 낀다는 말인가. 미투가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에 저항하며 연대하는 행동임을 전혀 모른다는 자백이다. 이런 특위에서 결의문을 내고 ‘성폭력 가해자 진상조사·신속수사 및 피해자 보호’를 외쳤으니 저질 코미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미 밝힌 바와 같이, 미투 운동은 특정 정당·정파의 유불리로 재단할 사안이 아니다. 안희정 전 지사가 최악의 성범죄를 저지른 만큼 소속 정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이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사죄해야 함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한국당에 갑자기 도덕적 우월성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기자를 성추행한 최연희 전 의원, 골프장 경기보조원을 성추행한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어느 당 소속이었나. 멀리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다. 새누리당(한국당 전신) 소속으로 19대 비례대표를 지낸 이만우 전 의원이 8일 강간치상 혐의로 구속된 터다.

지금 미투 운동은 거대한 해일과 같다. 정치권은 이 해일 앞에서 얄팍한 셈법 따위는 잊어야 한다. 법률과 제도를 정비해 가해자를 단죄하고 피해자를 보호·지원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피해자들의 용감한 증언과 간절한 호소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려는 세력은 어떤 정당이든 심판받게 될 것이다. 6·13 지방선거가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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