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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검찰단이 국군사이버사령부 대선개입 의혹과 관련해 연제욱(소장)·옥도경(준장) 전 사이버사령관을 군형법상 정치관여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군검찰은 두 전직 사령관이 이모 전 심리전단장으로부터 사이버 공간에서 대응할 기사와 대응 방안 등을 보고받고 승인했다는 점에서 정치관여 행위를 한 것으로 판단했다. 현역 군인이 정치관여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것은 1997년 대선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사퇴를 요구한 손모 중령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한국 민주주의 시계가 17년 전으로 되돌아간 셈이다. 더욱이 손 중령이 영관급 장교였고 개인적 돌출행동에 가까웠던 점을 고려하면, 이번 사건은 1987년 민주화 이후 군이 정치에 개입한 최악의 사례로 기록될 만하다.

군검찰의 수사 결과는 지난 8월 국방부 조사본부가 연·옥 전 사령관 등을 형사입건하며 밝힌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군검찰은 사건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 대해선 조사조차 하지 않은 채 면죄부를 줬다. 국방장관이 일일 사이버 동향을 보고받기는 했지만 정치관여 부분만은 보고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군색하고 구차하다. 누차 지적한 대로 부실·축소수사의 전형이다. 그럼에도 연·옥 전 사령관이 정치관여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된 의미는 간과할 수 없다. 멀게는 1987년 6월항쟁 이후, 가깝게는 1993년 군내 사조직 ‘하나회’ 해체 이후 ‘군의 정치개입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는 국민적 합의가 이뤄졌다. 그 합의는 지금도 굳건하다. 그런데 현역 군인, 그것도 장성급 인사들의 정치개입이 군검찰의 ‘셀프 수사’로 드러난 것이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국방부 백낙종 조사본부장이 지난 8월19일 서울 용산 국방부 브리핑룸에서 지난 대선 당시 국군사이버사령부의 댓글사건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한 뒤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_ 연합뉴스


외부의 사이버 공격에 맞서 싸워야 할 사이버사가 본분을 잊어버리고 국내정치에 개입한 것은 중대한 국기문란 행위다. 이 같은 중범죄를 철저히 엄단하는 대신 ‘꼬리 자르기’에만 골몰하다가는 다음 총선이나 대선 때 유사한 행태가 재연되지 말란 법도 없다. 본연의 임무에 진력하는 대다수 장병의 사기와 명예를 위해서라도 사이버사 대선개입 의혹의 진실은 끝까지 규명돼야 한다. 또한 군이 다시는 정치적 중립 논란에 휘말리지 않도록 확실한 재발방지 대책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군의 자체적 감시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한 만큼 독립적인 외부 기관의 감독을 받는 방안도 검토해볼 만하다. 군의 정치적 중립은 민주적 헌정질서를 지탱하는 핵심적 가치다. 다시금 이런 언명을 해야 하는 시대가 부끄럽고 개탄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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