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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통합진보당을 대리하여 지난 1년 동안 17차례의 변론을 하였으나, 여전히 정부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

첫 번째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는 정부는 2000년에 창당한 민주노동당 이래로 현재의 통합진보당까지 그 목적과 활동이 전부 위헌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미 13년 동안이나 문제 삼지 않다가 왜 갑자기 작년 11월에서야 제소하였는가 하는 것이다. 현재의 통합진보당의 핵심적인 강령과 활동은 민주노동당 창당 때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정부의 심판청구서에 첨부된 증거들을 보면 인터넷에 구글링해서 찾은 통합진보당과 관련한 보수논객의 칼럼과 보수언론의 주관적인 보도가 대부분이다. 그것도 많은 내용이 중복되어 재판정에서 무더기로 철회하는 소동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졸속으로 해산청구를 한 흔적이 역력하다.

두 번째 수수께끼는 정부는 통합진보당이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한다고 반복적으로 주장하면서 왜 통합진보당이 북한과 연계돼 있다는 단 하나의 확실한 증거도 내놓지 못하는지이다.

세 번째 수수께끼는 정부는 통합진보당의 목적과 활동이 위헌이라고 주장하면서 헌법의 어떤 조문에 위반된다고 주장하지 않고 왜 북한의 주장과 비슷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는가이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고유한 가치가 없고 북한이 대한민국의 헌법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인가?

네 번째 수수께끼는 정부는 통합진보당이 흡수통일을 반대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자고 하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흡수통일이야말로 북한이 망하기를 기다리거나 망하도록 기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헌법의 평화통일원칙에 위반된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자는 통합진보당의 정강정책은 6자회담에서 합의된 내용과 동일하다. 그렇다면 정부는 6자회담의 주체인 미국과 일본 등도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한다고 주장하는 것인가.

통합진보당 당원들이 25일 대전 둔산동 대전시청 앞에서 들고 있는 ‘담뱃세 및 주민세 인상 반대’ 팻말이 눈길을 끌고 있다. _ 연합뉴스


다섯 번째 수수께끼는 정부가 독일 공산당 해산결정을 교과서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독일은 해산결정된 독일 공산당이 재건되었음에도 재건된 공산당을 해산시키지 않고 있다. 독일이 재건한 공산당을 해산하지 않았음에도 독일의 민주주의가 붕괴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여섯 번째 수수께끼는 우리나라도 회원으로 가입하고 있는 베니스 위원회(법을 통한 민주주의 유럽위원회)의 지침과 유럽연방재판소의 결정례가 ‘정당이 테러나 폭력을 통해 헌법의 손상을 가져올 것이라는 명백한 위험이 없는 한 해산해서는 안된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통합진보당이 테러나 폭력혁명을 추구할 명백한 위험이 있다는 어떠한 증거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고작 제시한다는 것이 통합진보당 소속 이석기 의원 등의 내란음모 혐의에 대한 판결문이다. 그러나 이 사건의 항소심 재판부는 정부가 핵심적으로 주장한 지하혁명조직 RO의 존재를 부정했고 내란음모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체제전복의 위험성은 없다는 것이다.

일곱 번째 수수께끼는 정부는 통합진보당의 구성원 중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받은 자가 많기 때문에 위험한 정당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은 유엔에서도 인권침해를 하는 악법이라고 폐지를 권고한 바가 있고, 이전 열린우리당도 당론으로 폐지를 주장한 바가 있다. 그렇다면 유엔이나 열린우리당도 위헌세력이란 말인가.

정부가 이러한 의문에 명확한 대답을 내놓지 않는 한 불편한 소수야당을 제거하기 위해 해산심판을 청구한 것임을 자인하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정부에 비판적인 정당이 필요하다. ‘정당 없이 민주주의 없다’는 말이 옳은 만큼이나 ‘소수정당 없이 민주주의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말도 옳다. 정부가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의 조롱을 받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청구를 철회해야 한다.


이재화 | 변호사·민변 사법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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