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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밀양시 세종병원 참사는 허술한 방재시스템과 화재에 취약한 건물 구조, 병원 측의 미흡한 초기 대응 등이 맞물리면서 인명 피해를 키운 것으로 드러났다. 재난 대응 매뉴얼은 일반인에게 맞춰져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에게는 소용없었고, 가연성 소재가 많은 일반병원의 방염처리에 관한 소방법 규정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이번 세종병원 화재 사고 역시 이젠 입에 올리기에도 민망한 안전의식 부재가 빚은 대형참사일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세종병원 화재는 응급실에 설치된 환복·탕비실 천장의 전기 배선 발화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화재 확산의 주요 원인으로는 천장 단열재로 쓰인 스티로폼을 지목했다. 스티로폼이 타면서 불과 연기가 삽시간에 병원 내부로 번졌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세종병원 외벽은 29명의 사망자를 낸 제천 스포츠센터처럼 화재에 취약한 드라이비트 공법이 적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세종병원의 무분별한 불법 증축도 피해를 키웠다.

무엇보다 180명이 넘는 사상자를 낸 것은 부실한 방재시스템과 병원 측의 초기 대응이 미흡했던 탓이 크다. 세종병원에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았던 데다 화재가 처음 발생한 응급실 등 1층에는 화염과 유독가스의 확산을 막기 위한 방화문이 없었다. 대부분의 노인 환자들은 유독가스에 질식해 숨졌다. 방화문이 설치돼 있었다면 사망자를 줄일 수 있었다. 특히 중환자실 환자 상당수의 손목이 로프나 태권도복 허리띠 등으로 병상에 묶여 있어 구조대가 결박을 푸는 동안 유독가스가 퍼져 희생자가 늘었다. 병원 측은 보호자의 동의를 얻어 ‘병상 결박’을 했다고 하지만 철저한 진상 조사가 필요하다.

허술한 소방법 규정도 사망자를 늘리는 결과를 낳았다. 현행 소방법은 유흥업소와 종합병원 등 다중이용시설의 장식물과 벽체 등은 방염처리를 의무화하고 있다. 하지만 세종병원과 같은 일반병원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다. 알코올 성분이 든 약품과 매트리스나 이불 등 가연성 소재가 많은 일반병원을 방염처리 규제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 27일 밀양화재 관계장관회의에서 전국 29만곳을 대상으로 국가안전대진단을 실시하겠다고 했다. 늦었지만 당연한 조치다. 하지만 양적 목표에만 매달리다 질적 수준이 떨어지는 안전진단이 되지 않을지 걱정스럽다. 과거 정부에서도 셀 수 없을 정도의 대책을 내놨지만 ‘안전한 대한민국’은 헛구호에 그쳤다. 대형참사는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정권의 명운을 걸고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특단의 대책을 내놔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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