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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웅 법무부 장관과 최재경 청와대 민정수석이 사표를 냈다. 법무장관과 민정수석이 동시에 사표를 낸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의 수용 여부는 결정된 바 없다”고 했다. 지금 대통령이 사의를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 두 사람은 정부와 청와대 내 대통령 법률 참모로서 권력 유지의 양 축이다. 법치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런 두 사람이 대통령 곁을 떠나겠다는 것은 대통령직을 버티는 최후의 보루가 무너졌다고 볼 수 있다. 야당에선 “사정 라인의 두 축이 사의를 표명한 것은 침몰하는 난파선에서 선원들이 하나둘씩 탈출하고 있는 광경”이라고 했다. 어떻게 묘사하든 대통령을 비호해온 둑에 구멍이 뚫린 것이요, 내부 붕괴를 보여주는 징조가 분명하다.

김 장관은 지난 7월 진경준 전 검사장 비리 때 사표를 냈으나 반려된 것으로 전해졌다. 그때 책임지고 물러났어야 했다. 이제 청와대와 검찰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낀 신세가 된 상황에서 사표를 냈다고 해서 새로울 것은 없다. 최 수석은 임명장을 받은 지 불과 5일 만이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을 수습하고 무너진 공직기강을 확립하기 위해 새로 온 민정수석이 임명장 잉크도 마르기 전에 그만둔 것은 충격적이다. 대통령의 막가파식 대응이 법률가의 양심과 동떨어진 데다 더 이상 합리적인 설득도 기대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민정수석실이 본연의 ‘대통령 직무 보좌’가 아닌 대통령 개인을 위한 비리 변론 지원기관으로 전락한 데 대한 자탄의 성격도 짙다.

사의를 표명한 김현웅 법무부 장관이 23일 오후 경기도 과천 법무부 청사를 나서고 퇴근하고 있다. 정지윤기자

이제 관심은 다른 장관이나 수석비서관들의 사퇴가 이어질지 여부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과의 사연(私緣)에 얽혀 국기를 문란하게 한 것도 모자라 공권력인 검찰권까지 부정했다. ‘검찰공화국’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검찰을 국정 고비마다 활용해왔던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수사에선 불공정 운운하니 이런 코미디도 없다. 이러니 제정신 박힌 사람이라면 누군들 옆에 더 붙어 있고 싶겠는가. 이대로는 탄핵 정국을 끌고 가기 어려워졌음을 의미한다.

헌법은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라고 규정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위임 받은 권력을 사익을 위해 사용하고 헌법을 유린했다. 4·19혁명 당시 허정 외무부 장관은 이승만 대통령에게 이제는 물러나야 한다고 충언했고, 이 대통령은 다음날 전격 하야했다.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사람들의 이탈 행렬은 그래서 예사롭지 않다.

나라가 이 지경이 되기까지 장관과 청와대 참모들이 저지른 잘못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최순실이 국정에 손댄 흔적을 보면 청와대와 공직자가 수족처럼 움직였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헌정 문란의 공범이자 방관자라고 해도 과한 말이 아니다. 그동안의 과오를 뉘우치고 엎드려 사과해도 모자랄 처지다. 그런데도 한편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 한국사 국정교과서 강행 등 국정 폭주를 이어가고 있다. 이들에게는 촛불민심도, 시민들의 분노도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이 판국에 장명진 방위사업청장은 미국에 가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요구한다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협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먼저 두 손 들고 무릎을 꿇은 격이니 도대체 어느 나라 관리인지 할 말을 잃게 한다. 국정 최고 책임자부터 국가 기강을 흔들고 자기 안위만 챙기고 있는데 고위 공직자라도 정신 차려서 국정을 바로잡기를 기대하는 일도 무리다.

새누리당 남경필 지사·김용태 의원 탈당에 이어 법무장관·민정수석 사표, 김무성 전 대표의 탄핵 선언 등 당·정·청에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은 여권 내부에서 금이 가고 바닥이 꺼지는 균열의 본격화라고 할 수 있다. 총리도 부총리도 짐 보따리를 싸놓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 소송을 대표하는 법무장관까지 가세했으니 사실상 멈춰 선 정부가 됐다. 검찰은 대통령에게 29일까지 대면조사를 받으라고 최후 통첩을 보낸 상태다. 이번엔 또 무슨 궤변으로 검찰 수사를 거부할지 모를 일이다. 그럴수록 설 곳이 없으리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청와대는 검찰 수사를 ‘사상누각’이라고 했지만 되레 청와대가 ‘모래 위의 성’이 돼 가고 있다. 이제 대통령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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