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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 지방선거에서 보수정당들이 참패했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겨우 대구·경북 두 지역에서만 광역단체장 당선인을 냈다. 텃밭이었던 부산·울산·경남도 내줬다. 기초단체장 역시 민주당이 226곳 중 151곳을 석권했다. 경북 구미시 등 보수의 아성이었던 상당수 지역에서도 민주당이 당선인을 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14일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 여러분들의 선택을 존중한다”며 지도부와 함께 사퇴했다. 바른미래당 유승민 대표도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2016년 총선과 지난해 대선에 이어 보수당이 이렇게 연달아 크게 패배한 사례는 없었다. 한국의 주류가 바뀌는 것 아닌가 하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이번 선거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유권자들의 지지가 공고하다는 점을 확인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는 보수세력을 철저히 심판했다는 의미가 더 강하다. 집권세력의 사회·경제 정책에 대한 만족도가 높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야당이 참패한 것은 보수당들이 대안세력으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음을 웅변한다. 특히 보수의 맏형 격인 한국당이 민심과 괴리된 정도는 심각하다. 북한과 미국이 70년 적대관계를 청산하겠다고 나서는 초유의 상황에서도 낡은 안보관을 고집했다. 최저임금 인상, 복지 확대를 통해 경기를 부축하려는 정부의 정책도 세금을 쏟아붓는 포퓰리즘으로 치부했다. 합리적인 대안은 내놓지 않으면서 강경 일변도의 대여 투쟁을 벌였다.

시민들은 사소한 범법행위도 처벌받는데 전직 대통령들의 엄청난 비리를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하고 방탄국회로 동료를 감쌌다. 겉으로는 민의를 받든다고 했지만 여론조사와 언론 탓을 하며 숨은 표에 기댔다. 이런 당을 지지해달라는 것 자체가 염치가 없는 일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함께 국정농단을 한 책임을 탄핵으로 물었는데도 경고를 외면하니 유권자들이 더 큰 매를 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촛불집회에서 확인됐듯 지금 시민들은 정치권을 향해 새로운 가치와 태도를 요구하고 있다. 시민들은 경제성장과 그에 따른 부의 편중보다 공정한 분배, 복지를 통한 삶의 질 향상, 지방분권 등에 더 주목하고 있다. 전통적인 보수의 덕목보다는 진보적 가치에 동의하고 있다. 따라서 보수가 이런 가치를 등한히 하는 한, 또 시대정신을 반영한 새로운 철학으로 무장하지 않는 한 보수 재건은 요원하다. 보수당들이 진정 정치적으로 재기하고자 한다면 기득권을 버리고 보수의 철학과 노선을 재정립하는 것 이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한·미동맹이 중요하지만 동맹 만능주의에만 의존하는 안보관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시장이 만능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시장의 실패에도 대비할 줄 알아야 한다. 제대로 된 복지정책을 펴 보지도 않고 과잉복지를 외치는 것은 기득권을 강화하겠다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소득주도 성장정책이 비현실적이라면 비판만 하기에 앞서 시민을 향해 대안을 내놓는 자세가 필요하다. 청년 실업률 해소를 위해 보수적 해법이라도 내놓으면서 비판해야 설득력이 생긴다.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고 건강한 토론을 통해 정책으로 경쟁하는 정치를 시민들은 바라고 있다.

보수 재편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조기 전당대회 개최를 통한 새 리더십 구축에서부터 당의 전면적 쇄신, 나아가 당의 해체까지 거론됐다. 보수는 위기가 닥칠 때마다 혁신을 외쳤지만 시민들이 다 시늉이라고 여기고 있다는 게 확인됐다. 바뀐 세상에 맞는, 시민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보수의 가치와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대통합을 외치기 앞서 비전을 세우고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시민들은 어떤 보수냐를 묻고 있다. 홍준표 전 대표는 “나라가 통째로 (민주당으로) 넘어갔다”고 말했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탄핵의 분노가 가시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아직도 참패 원인을 바깥에서 찾고 있다. 성찰이 먼저다. 보수 없는 정치는 위험하다. 지금이 보수 재건의 마지막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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