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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줄곧 야권이 우세했다. 대개 정권 중반에 치르는 지방선거는 중간평가 성격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방선거는 ‘여당의 무덤’으로 불렸다. 엊그제 끝난 6·13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보궐선거는 여권 압승으로 끝났다. 기존 지방선거 결과와는 딴판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1년 남짓이어서 중간평가로는 이른 감이 있지만 시민은 현 정권에 압도적 지지를 보냈다.

<!--imgtbl_start_1--><table border=0 cellspacing=2 cellpadding=2 align=RIGHT width=200><tr><td><!--imgsrc_start_1--><img src=http://img.khan.co.kr/news/2018/06/14/l_2018061501001653800136361.jpg width=200 hspace=1 vspace=1><!--imgsrc_end_1--></td></tr><tr><td><font style=font-size:9pt;line-height:130% color=616588><!--cap_start_1--><!--cap_end_1--></font></td></tr></table><!--imgtbl_end_1--> 여권은 선거결과에 자만할 것이 아니라 시민이 표를 몰아준 이유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사실 문재인 정부 이후 경제정책 측면에서만 보면 시민 삶의 질이 크게 나아졌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서민 생활은 더 어려워졌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청년 일자리는 여전히 개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구조조정 여파로 일부 지역경제는 몸살을 앓고 있다. 저소득층 소득이 뒷걸음질하는 등 분배가 악화했다는 지표도 나왔다. 지금 청년은 부모세대보다 못사는 첫 세대가 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퍼지고 있다.

그럼에도 여권이 지방선거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것은 ‘착한 정부’에 대한 시민의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물론 박근혜 정부의 무능이라는 기저효과와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반사효과도 있었다.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을 대폭 올린 것은 경제정책의 핵심인 소득주도성장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공정한 경제질서를 세우기 위해 갑을관계 개선과 재벌개혁에 매달렸다.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추가로 예산을 편성했다. 노동자의 저녁 있는 삶을 보장하기 위해 노동시간을 단축했다. 한결같이 경제적 약자 편에 서서 불평등을 줄이겠다는 정책이다. 부정과 무능, 특혜로 얼룩졌던 과거 정권과 차별화된다.

오는 19일 열리는 경향포럼 참석차 방한하는 세계적인 석학들도 이 같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취지에 공감하고 있다. 2015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앵거스 디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단순히 ‘누군가 일자리를 잃을 수 있으니 최저임금을 올리면 안된다’는 식의 이야기는 바보 같은 소리”라고 했다.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던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 역시 “수요가 충분하지 않을 때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은 좋은 방식이다”라고 진단했다.

그런 평가를 받는 소득주도성장을 놓고 최근 청와대와 내각이 갈등을 빚었다. 최저임금 인상과 소득분배 악화 지표를 둘러싸고 이견을 드러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소득주도성장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의견을 내자,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등이 비판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가보지 않았던, 어쩌면 실험적인 소득주도성장 길을 가고 있으니 진통이 따르는 게 당연하다. 건전한 논쟁이라면 환영한다. 바짝 엎드린 게 아니라 대통령 면전에서 경제부총리와 정책실장이 격론을 벌였으니 발전적 모습이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갈등은 더 이상 증폭되지 않고 조용히 봉합되는 듯한데, 그 과정이 수상하다. 이후 청와대와 정부는 논쟁을 촉발했던 소득주도성장은 접어두고 혁신성장을 강조하고 있다. 혁신성장장관회의가 처음 열렸고, 기재부 안에 별도의 본부를 설치한다고 한다. 혁신성장은 소득주도성장 등과 함께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 과제이기는 하다. 하지만 지금 혁신성장의 초점이 규제완화에 맞춰져 있는 것은 문제다. 규제를 풀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면 투자가 늘어나 경제가 성장한다는 뜻 아닌가. 만약 과거 정부에서 추진했던 것과 같다면 소득주도성장과는 궤가 전혀 맞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가 주창했던 창조경제, 무역투자진흥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것 같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작용이 일부 현실화한 것은 사실이다. 정부는 제대로 된 통계나 분석조차 없이 최저임금 인상을 단행했고, 부정적 효과도 예측하지 못했다. 6개월 전 이 칼럼을 통해 지적했던 ‘디테일에 숨은 악마’를 찾아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여당 또한 직무유기한 책임이 큰 데도 시치미를 떼고 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반성하고, 왜 그런지 면밀히 살펴 대책을 세워야 한다.

지금처럼 한다면 소득주도성장은 공염불이 될 수 있다. 최저임금 인상이 전부는 아닌 만큼 소득주도성장을 훼손하지 않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소득과 노동, 복지, 조세 등 각 분야에서 촘촘하게 정책을 짜야 할 것이다.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실행할 정책이 뒷받침하지 않으면 실현할 수 없다. 여권이 지방선거에서 이긴 것은 잘해서가 아니다. 정부의 선한 의지를 믿는 시민이 아직은 많다. 제대로 못했어도 당분간 지켜보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시민의 희망을 저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안호기 경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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