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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김무성·유승민 등 비박근혜계 의원 30여명이 어제 회동한 뒤 다음주 탈당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모임의 대변인인 황영철 의원은 “가짜 보수와 결별하고 진정한 보수 정치의 중심을 세우고자 새로운 길로 가기로 뜻을 모았다”면서 “패권주의를 청산하는 새로운 정치의 중심을 만들어 안정적·개혁적으로 운영할 진짜 보수세력의 대선 승리를 위해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원희룡 제주지사 등도 탈당 의사를 밝혔다. 사상 처음으로 보수정당의 분당이 현실화한 것이다. 그만큼 보수 진영의 위기가 심각하고 새로운 보수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징표이다.

비박계의 탈당은 늦었지만 당연한 귀결이다. 새누리당 친박근혜 세력은 지난 4월 총선에 이어 국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의결로 여론의 매서운 심판을 받았음에도 반성은커녕 민심을 거스르는 길만 걸어왔다. 이번 탄핵 정국에서도 뉘우치는 듯하다 틈만 보이면 이내 제자리로 되돌아가는 후안무치한 행태를 보였다. 막판에는 비주류에 비상대책위원장을 양보할 것처럼 하다가 뒤집는 치졸함까지 드러냈다. 총선이 3년 넘게 남았고, 촛불은 곧 사그라들 것이라는 근거 없는 기대감 등에 기댄 탓이다. 그러면서도 말로는 재창당 수준의 혁신과 변화를 통해 당을 재건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우택 원내대표가 탈당 의원들을 비판하면서 ‘유일 보수정당의 법통’ 운운한 것은 가히 시민에 대한 모독이다. 비박계의 탈당은 그나마 시민의 질타를 두려워하는 보수세력과 기득권에 젖은 비양심적 가짜 보수의 결별이다. 보수 내부의 싸움이 아니라 상식과 비상식의 대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와 유승민 의원을 비롯한 비박계 의원들이 21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긴급 탈당 기자회견 후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이날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 31명이 '집단 탈당'을 결의하고. 탈당 시점은 오는 27일이다. 권호욱 선임기자

지난 총선과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은 반칙 없는 세상과 더불어 책임지는 정치를 요구했다. 극우적 세계관과 영남 지역주의를 벗어난 건강한 보수, 명예와 도덕이라는 보수적 가치를 중시하는 진정한 보수 정치세력을 시민들은 갈망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탈당파는 이 같은 새로운 보수에 대한 시민들의 욕구를 감지한 것으로 보인다. 수도권 의원들을 중심으로 부산·경남을 비롯한 전국 각 지역 의원들이 골고루 포진하고 있다. 수구적 이념과 지역의 한계를 넘어서는 진짜 보수당으로 발전하길 바란다. 앞서 탈당한 남경필 경기지사와 김용태 의원까지 가세하면 신당 추진은 더 탄력이 붙을 것이다. 탈당파가 중도보수 성향의 신당을 창당하면 정치권은 1990년 3당 합당 후 26년 만에 4당 체제로 바뀌게 된다. 다양한 정책의 대결과 함께 곧 있을 대선 정국에서 정책에 따른 연대 가능성도 커진다.

하지만 이들이 진짜 보수정당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과제를 풀어야 한다. 과거에도 보수당은 위기 때마다 새로운 보수, 진정한 보수를 표방했다. 이명박 정권 출범 전에는 뉴라이트라는 이름으로 보수의 혁신을 외쳤지만 결국 집권을 위한 한 편의 사기극으로 막을 내렸다. 보수의 정책과 가치에 충실한 정당이 아니라 파벌과 이권, 인물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구태의연한 모습을 연출했다. 이번 탈당도 대선용, 위기모면용이라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한국 정치사에서 보수당을 박차고 나간 정치세력이 성공한 예는 없다. ‘보수정당의 분열은 필패’라는 말이 있을 만큼 탈당과 신당 창당은 고난의 길이다. 그러나 낡은 체제의 극복과 진정한 보수정당의 필요성은 어느 때보다 크다. 흔들림 없이 보수의 가치를 추구하며 개혁을 한다면 한국 정치사를 새로 쓰는 진정한 보수세력으로 우뚝 서게 될 것이다. 막 닻을 올린 새누리당 탈당파의 실험을 주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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